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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음에도, 늘 관심갖던 이유. 박찬욱 감독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은 좀처럼 쉽게 잊혀지는 경우가 없다. 어떤 모습이든, 배우가 가진 재능을 향한 감독만의 탄복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이번에 탕웨이가 그랬고 <아가씨>김민희, 김태리가 그랬으며, 예전 <박쥐>김옥빈, <올드보이> 강혜정 <복수는 나의 것> 배두나가 그랬다. 그리고 김신영이 있었다. 천재적 재능 때문이라고, 이유 없는 캐스팅은 없음을 대놓고 밝혀주는 박찬욱 감독 인터뷰가 좋았다. 영화를 보게 되면 카메오가 아니라 형사로 김신영을 캐스팅한 박찬욱 감독 의중이 궁금할 법 하다. 1부는 오수완(고경표), 2부는 여연수(김신영). 오수완은 의심도 공평하게 하는 게 형사로서 도리라고 믿는다. 젊고 예쁘다는 이유로 고급 초밥을 사주는 것도 모자라, 용의선상에 제외해버리는 해준 행동이 못마땅하다. 정의로운 형사 캐릭터를 밀어붙이는 오수완은 기어이 역차별이란 말을 입에 담는다. 해준이 서래에게 감정을 느껴 수사를 종결시키려 한다는 의심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수완 또한 별다른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제 의심 자체가 이미 편견의 일부라는 걸 모른채 술 먹고 꼬장 부리면서 스스로 떳떳하다고 믿는다. 해준은 오수완의 의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이포에서 활동 중인 강력계 형사 연수는 아싸다. 아니 왕따다. 동료들은 연수가 흡연자이고 같은 장소에서 흡연하는데도 불 조차 빌리지 않는다. 공공연한 왕따의 현실을 박찬욱 감독은 이 한 장면만으로 관객들에게 설명해낸다. 남초 사회에 적응한 강력계 여형사 캐릭터 전형이 있다. 여성성이 읽힐 만한 흔적들을 긴 코트 + 단발 스타일 + 약간 억눌린 듯한 목소리와 담백한 말투 등으로 감춘다. 여성성을 가능한 많이 감춰야 유능한 쪽으로 비춰진다는 얘기다. 과연 그런가 싶지만. 연수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연수에게는 남초 사회에 적응하려는 모습 역시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왕따를 당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보게 된다. 이분법에 속하지 않은 존재니까. 관할 지역에서 벌어진 꽤 큰 사건에 신이 나서 질문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한편 서래를 의심하는 해준에게 서래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따지듯 묻는다. 해준은 잠시나마 흔들린다. 의외로 클리셰스럽지 않게 녹아든 이 장면이 특이했다. 감정 섞인 여형사 캐릭터라는 지루한 편견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질감이 달랐다. 연수라는 인물은 그런 말도 했다가 다시 수사 세계로 빠져들기도 하는 비교적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이도록 김신영이 연기를 한건지 모르겠지만, 이때 분명 영화가 탄탄하다고 확신하게 됐다. 김신영이 이전 콩트 경험을 비롯해 종종 등장했던 영화들과 놓고 봐도 특별히 뛰어난 연기를 한 건 아니다. 유행스러운 말(아직도 유행인가?)처럼 김신영은 그저 김신영했는데, 박찬욱 감독 역시 그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 서사와 맥락 안에 별 이질감 없이 집어 넣어 놨다. 이런 부분에서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듯 하다. 2. 영화를 보고 나면 안개에 대한 감상이 없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많다. 그렇지만 청록색도, 음악 얘기도 모두 포함하자면 글을 끝맺기란 불가능할 듯 하다. 안개는 공기 중 수분이 잘게 잘게 부서져 내 호흡을 드나드는 무수한 숨결들과 같다. 녹아내린 세상 풍경들이 서늘하고 텁텁한 내음을 풍긴다. 안개는 주위를 죄다 삼키고 제 안에 뭐가 있는지 알도록 하지 않는다. 그런 안개를 서양은 희뿌옇고 하얀 빛과 안개가 집어삼킨 주변의 빛을 오묘히 섞어 묘사한다. 반면 동양은 여백으로서 그 정서를 종이 위에 옮겨 놓을 뿐이다. 여백은 대상에 대한 표현을 간결히 하고, 빈 공간을 강조해 오히려 더 깊은 내용을 전달한다. 여유일까. 충만일까. 이 영화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주인공들을 위해 단어나 문장을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해놓은 점에 감탄했다.(근데 몇 몇 대사가 잘 안 들렸.. 이것도 혹시 의도였나? 안개를 소리화..?) 설정상 송서래는 한국말이 서툴러 두 사람은 단어 하나, 혹은 어색한 문장들로 본인들을 삼켜버린 안개 속에서 서로를 찾듯이 대화를 이어간다. 한편 통역앱 안에 통역될 문자는 가득한데, 정작 통역앱은 문자 속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주지 못하고 구멍 뚫린 말들을 전달하기에 바쁘다. 해준과 서래가 서로를 지켜보고 떠올리며 중얼거린 음성 메모 속에 정작 서래와 해준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음성은 늘 비어있다. 해준이 서래가 머물던 사건 장소를 찾을 때마다 비어있을 뿐이고, 해준은 서래 없는 빈 공간에 머물며 서래를 향한 의심이 점점 짙어져 간다. 비어있어서 미완이고 또 미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 서있는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감정과 생각을 끊임없이 허용해주어 확장된다. 한 세계가 붕괴될 때까지.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독일 낭만주의 대표화가 카스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 작품 제목이다. 제목처럼 바다 풍경은 아니고, 산 꼭대기 어딘가에서 안개에 휩싸인 산맥을 담담히 바라보는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영화와는 일절 관련 없다. 방랑자는 안개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다. 무언가 결심이 섰을까. 마침내. 눈을 감으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면 이제 당신도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죠. 수많은 안개 물방울들을 가라 앉히고 또 가라 앉혀서 어느 순간에 한데 어우러지는 강물 된다면 안개 속에서는 꽃도 흐릿한데, 우리 사이의 거리가 무슨 염려인가요. +진짜 카메오들 ㅋㅋ 보다가 어? 했다. 한 명은 알아봤는데, 다른 한 명을 못 알아봤다.. ++번역 음성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는데 왜 바꿨을까. 그런 시덥잖은 게 궁금해지기도. +++배경 세트들이 예쁘고 정갈하다. 초밥도 맛있어보였는데, 그것보단 왜 이렇게 예뻐보이지 놀랐다. ++++박찬욱 감독 사진작들을 더 좋아한다. 부산 전시에 따로 찾아갔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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