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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아르웬이 흑인이면 안되는 걸까? 갈라드리엘은 꼭 백인이어야만 할까. 반지의 제왕 판권이 디즈니에게로 가면 캐릭터 인종이 바뀔까? 그럼 큰일 나는 걸까? ...왜 안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 위키드 등을 공연하거나 영화화 한다면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 걸까. 아시안 배우들도 원작 속 백인 캐릭터 연기 잘한다. 관객들도 그러려니 하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단지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 수도 있겠지만.) 연극(뮤지컬) 무대랑 영화판은 다르다는 주장도 있지만, 유럽 미국 무대에서도 2010년대를 넘어 최근까지 인종 쿼터가 극심했다. 인종에 구애받지 받고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건 이제야 아기가 갓 뒤집기를 성공한 상황처럼 극초기 단계에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라고 안될 게 무엇이며, 이는 또 다른 새로운 트렌드이지 않을까. 캐스팅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들이 많겠지만, 무엇보다 피사체와 카메라 프레임의 조화가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 보일 수 있는지는 직접 카메라에 담아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많이 찍어 보고 시도해보는 수 밖에. 일례로 프랑스 화가 마티스는 장미를 반드시 장미색으로 칠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장미가 가진 다양한 본질과 그를 표현하고자 하는 주체(본인)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탄생시킨 조형(타협안)을 화면에 옮겼을 뿐이라고 덧붙안다. 그래서 검정도 장미, 그리고 빛의 색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마티스는 대상과 사물들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체성은 절대적인 근원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익숙한 것들은 과연 리얼리티인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상상력은 어떤 한계에서도 자유롭다. 그렇게 낯섦의 세계와 맞닿는다. 정체성은 눈으로 보는 결과와 이해를 넘어 상상과 낯섦이 뒤섞이며 빚어내는 고유한 삶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낯섦은 처음 받아들이기가 힘들 뿐, 늘 괴로운 건 아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위선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익숙함을 떨쳐버리려는 담담한 태도야말로 친숙한 문화와 언어로 이루어진 좁디 좁은 이해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듯 하다. 듄에서 젠데이아가 히로인을 맡았다. 피부색 고증 논리에 따르자면 젠데이아는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듄에 캐스팅될 수 없었다. 듄 제작진과 젠데이아가 해석해낸 물라토가 지닌 본질은 영화 비주얼에 어떤 부정적 영향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아주 깐깐하게 고증을 따져야 할 역사 재현 장르가 아닌 이상, 배역에 인종이 고정돼 있다는 건 편견에 불과한 게 아닐까.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는 너무(지나치게) 많이 아는 걸 경계하라고 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고 결론내리는 건, 본인 눈을 멀게 할 뿐이다. 그건 나이 들어서 뿐 아니라, '아는 것들'이 눈 위에 점점 쌓여왔기 때문이다. "지나친 분석은 진실을 손상시킨다." -듄 2부 <프레멘의 옛 격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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