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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스러웠던 전쟁 영화 <1917> 오늘날까지도 서구 영화에서는 진흙탕과 시체가 나뒹구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흔하다. (어이없게도)Great War 이라고 불린 1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참호전 경험이 고스란히 비극으로서 각인된 결과일 것이다. 우선 20세기를 4개 파트로 쪼개보자. 1900~(1914) : 1차 세계대전 발발, 공산주의와 파시즘 탄생. 1925~ : 히틀러와 스탈린 등장, 홀로코스트, 제 2차 세계대전, 핵무기 공식 사용, 우크라이나 기근, 일제 기간동안 벌어진 참혹한 만행들. 1950~ : 냉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란 혁명 1975~ 지금까지 지난 100년 동안 어떤 시대에 살았어야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까. 모아놓고 보면 언제나 반응은 한결같다. 지난 세기 대단했다. 그리고 1945년까지 전쟁, 폭정, 기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우연히 등장한 (미국)민주 정치에 희망을 품고 세상이 좋아졌다고 믿는 아이러니까지. 그도 그럴 것이 2개국 이상 참전하는 대규모 전쟁도 없었고, 세계 GDP는 70년 동안 한해 평균 35%이상 성장했다. 한편 40억명이 빈곤에서 벗어난 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결과들이었을까. 아니면 미국(유럽 사회)에 놀아난 결과였을까. <1917>은 전선(front)이 가진 첫 번째 의미를 되새긴다. 사전에 쓰여진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연결한 가상선'이라고 풀이한 뜻은 추상적이다. 이 영화는 현대에서 보기 어려워진 전선이란 개념을 구상화시켰다. 천장만 뚫린 채 끝없이 이어진 땅굴(전투 지역)에서 먹고 자고 싸는 모습으로. 전투 시기에 따라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상처가 썩고 비와 진흙탕물에 뒤범벅된 상태로 죽음을 기다린다. 이것이 전선이 갖는 원초적 의미다. 넋이 나간 상태로 포성만 울리면 방아쇠를 당기고, 폭탄과 기관총격에 시달리다 공황상태로 쓰러진 어린 시체들로 그려 넣은 가상선이 전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테이크 필름을 가장한 촬영 기법은 전선을 시각화하는데 꼭 알맞는 형식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을 번갈아 덮쳤던 군인들의 양민학살이 남한 대중에게 '빨갱이'라는 공포를 심었다면, 서구에서는 <1917>이 담고 있는 악몽 자체를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 후 서구 사회에서 촉발된 '진보'란, 전쟁의 상처를 파묻고 외면하기 위한 아우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백병전, 기동전, 지뢰전, 그리고 미사일(핵) 개발에 이르기까지 전쟁만 여전히 빠르고 편리하게 '진보' 중이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가 요약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이렇다. '오직 죽은 자들만이 종전을 목격했다.' 유럽을 중심에 둔 인류가 전쟁을 어떻게 치루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다. 산타야나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인류는 연이어 유럽을 넘어서 지구촌 전역까지 핏빛과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파괴했다. 암울한 전망이겠지만 지금도 지난 역사를 무시하는 역사가 또 반복될 조짐이 보인다. 이 세대에서도 전쟁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을 늘어 놓은 무식이 두렵고, 권력이 혐오스럽다. 영화 속 클라이맥스를 즐길 수 있었던 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영웅이란 건 없다. 장기말들이 모두 쓰러져 필드 밖으로 내팽겨쳐지는 한이 있어도 왕을 지키면 된다. 그런데 왕은 누구일까. 대체 누구길래 우리 목숨을 쥐고 흔드는 것일까. 일부 생존자들에게 나눠진 훈장과 명예는 전쟁범들의 위선을 위한 핑계일 뿐. 왜 그들은 스스로 영웅이 되지 않을까? 애초에 영웅이란 게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아닐까? 자칭 고귀하고 숭고한 혈족들이시여! King's Royal 좋아하시네. +100년 전 무력하기 짝이 없는 길고 긴 전선과, 계급 갈등 그리고 빈부격차가 압축된 펜트하우스가 동시에 상영된 것도 무슨 우연인지.. ++1917년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다고 목숨 걸고 마음 먹었던 결과가 음.. 기생충이라니? 이거야말로 아포칼립스 아닌가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또 다른 아포칼립스가 기다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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