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틀랜드

세라 스마시
4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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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골 백인 빈곤 여성’이라는 존재는 어떤 것일까? 이 책 전체가 바로 이런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설명하기 곤란하고, 미국에서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지만 미디어에서 제대로 재현된 적이 없다는 시골 빈곤 계층의 삶을 설명한다는 것도 곤란하고, 백인 빈곤층이 어떻게 생기는지 인종주의를 빼고 설명하는 것도 곤란하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굴레가 중첩되면 이 존재는 간명한 언어와 쉬운 이미지로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4년 전 트럼프의 당선에 미국의 주류 미디어와 지식계가 깜짝 놀란 이후, 힐빌리라고 불리는 이들, 혹은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얼마나 진지했는지는 의문이다. 그 다양한 차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고 하는 편이 정당하겠다. 『힐빌리의 노래』를 비롯해 이에 대해 해석을 제공하고자 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미국 시골 백인 빈곤 여성’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불충분하게만 이해되고 설명된다. 『하틀랜드』는 그런 삶을 그 어떤 책보다 정확히 기록하고 증언하고자 하는 책이다.

Author/Translator

Table of Contents

작가의 말 오거스트에게 1장 지갑 안 동전 한 푼 2장 가난한 여자의 몸 3장 밀밭 사이 끝없는 자갈길 4장 나라가 부과하는 수치 5장 지붕이 새는 집 6장 노동 계급 여성 7장 나의 출신지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Description

전미도서상 파이널리스트, 버락 오바마가 뽑은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NPR, 뉴욕포스트, 버즈피드, 셸프어웨어니스, 버슬, 퍼블리셔스위클리 올해의 책 선정 가난에 관한 가장 사려 깊고 정교한 증언! “가난에 대해 누가 써야 하는가. 쓸 수 있는가. 나는 이 책 이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_ 정희진,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가난과 불행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성들의 삶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틀랜드』는 여성의 자기서사가 사회 구조를 해부하는 글쓰기임을 알려준다. 놀랍고도 소중한 작품이다.” _ 장영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미국 시골 백인 빈곤 계층의 삶을 증언하고 가난을 수치심으로 징벌하는 사회를 고발한다 ‘미국 시골 백인 빈곤 여성’이라는 존재는 어떤 것일까? 이 책 전체가 바로 이런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설명하기 곤란하고, 미국에서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지만 미디어에서 제대로 재현된 적이 없다는 시골 빈곤 계층의 삶을 설명한다는 것도 곤란하고, 백인 빈곤층이 어떻게 생기는지 인종주의를 빼고 설명하는 것도 곤란하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굴레가 중첩되면 이 존재는 간명한 언어와 쉬운 이미지로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4년 전 트럼프의 당선에 미국의 주류 미디어와 지식계가 깜짝 놀란 이후, 힐빌리라고 불리는 이들, 혹은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얼마나 진지했는지는 의문이다. 그 다양한 차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고 하는 편이 정당하겠다. 『힐빌리의 노래』를 비롯해 이에 대해 해석을 제공하고자 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미국 시골 백인 빈곤 여성’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불충분하게만 이해되고 설명된다. 『하틀랜드』는 그런 삶을 그 어떤 책보다 정확히 기록하고 증언하고자 하는 책이다. 세라 스마시는 캔자스의 시골 농장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보내며 성장하여 지금은 경제적 불균형에 관해 활발히 논평하고 있는 학자다. 스마시는 미국 시골의 빈곤층으로 자란 삶을 기록하며 가난의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하나씩 관찰한다. 당사자이기에 가능한 기록이지만, 연구자로서의 엄밀함과 객관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기록된 이들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하지만 때때로 위엄 있고, 불안하지만 끈질기며, 폭력 속에서도 사랑을 키워낸다. 어떤 이미지로도 단순화할 수 없는 이들은 대체로 어려운 환경과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삶을 낫게 만들려는 의지로 버텨내는 사람들이다. 캔자스 하면 한국의 독자들조차도 몇 가지 상징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 토네이도, 하늘, 들판, 튤립……. “날아서(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는 땅”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거대한 장소에서 누군가는 농사를 지으며, 누군가는 건설 공사를 하며, 또 누군가는 값싼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엄청난 양의 노동을 통해 살아간다. 여성들은 10대에 임신을 하고, 학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해 임시직을 전전하며, 주거도 불안정해 이곳저곳을 떠돈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결국 더 큰 문제로 빠져들기도 한다. 폭력과 마약에 노출되고,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보수당에 투표한다.(진보적인 빈민 구제 정책들이 왜 가난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가에 관한 생생한 답도 이 책 안에 들어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가난은 유난히 수치스러운 것으로 경험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빈곤층이 단순히 정보가 부족하고 정치적 고려의 여유가 없어서 무지한 상태로 보수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인 편견을 깨드릴 중요한 열쇠다.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계층 분리는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도 점점 더 불충분해지고 있다. 또 그에 따라 이들의 존재는 더더욱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대변되지도 대표되지도 않게 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강화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전 어느 사회에서보다 더 강력하게 ’수치심‘을 정체성으로 강요당하게 된다. 당연히 이들의 존재는 더더욱 위축되고 작아지게 되고, 이들을 재현하거나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언어는 더더욱 줄어든다. 이 책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읽어내는 것은 그래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중요하다. 내가 어릴 때에 미국 사람들은 미국에는 계급이 없다고 믿었어. 나도 고등학교 때 19세기 영국 소설을 읽기 전에는 계급이라는 개념을 접해본 적조차 없었던 것 같아. 계급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니,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가 느끼게 되는 수치를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 즉시 무효화될 수밖에 없었지. 계급을 인식하지도 않았고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하지도 않았어. 그러니 나 같은 아이, 즉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고 서랍 속을 뒤져 내가 사랑하는 속을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의 과거를 알아낼 단서를 찾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하루하루가 조용히 좌절감의 대못을 박아넣는 것 같았단다. 내가 어릴 때 느꼈던 가장 주요한 감정은 문제가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겠는데 다들 문제가 없다고 말할 때 느끼는 좌절감이었어.(30) 엄마는 실제보다 더 부유해 보이게 꾸미는 재주가 있었어. 엄마한테는 뭐랄까 담대한 위엄 같은 게 있었거든. 엄마는 사람들이 벽에 그림을 너무 높이 건다고, 그게 정말 신경 쓰인다는 듯이 말하곤 했지. 그거 말고도 걱정할 거리가 없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또 더러움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 청소부를 고용할 형편이 아니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지만. 엄마가 청결에 매달린 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럽게 산다는 편견을 강화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을 거야. 우리 여자들은 이런 뼛속 깊이 흐르는 걱정을 물려받았어. 베티 할머니도 처음 가본 햄버거 가게나 길가 모텔 안에 들어가서 둘러보고 괜찮다 싶을 때 하는 첫마디가 늘 “깨끗하네”였지.(57~58) 네가 태어났다면 너도 창의적이고 부지런해졌겠지. 가난하면 그래야만 하니까.(62) 충격적이었던 건 아빠가 입은 정신적 상처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아빠가 아무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어. 일하다가 죽는 게 자기 운명이라는 걸 잘 안다는 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커서 자기가 희생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이 말했어.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드물지 않긴 했지. 1960년대에, 아빠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삼촌이 우리 농장 근처 다리에서 트랙터가 미끄러져 내려와 거기 깔려 세상을 떴대. 나는 거의 날마다 그 다리를 건너면서 아빠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어.(107) “『분노의 포도』 말고 다른 데에서는 한 번도 못 들어본 얘기야.” 내가 농장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면 다른 지역 출신인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렇게 말해. 우리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거야. 사실은 그들이 결코 가지 않는 곳에 존재했던 거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해. 내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을 정치 담론, 뉴스 매체, 대중문화에서 정형화하거나 100년 전 일인 것처럼 묘사하지 않고 다루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151) 우리 가족은 열심히 일하는 걸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들인데도, 노력한 만큼 반드시 얻는 게 있다는 생각을 다른 미국 중산층보다 훨씬 일찌감치 버릴 수밖에 없었어. 날이면 날마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쉼 없이 일했으니, 우리가 이렇게 쪼들리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이 명백했거든. 문제는 공산품 시장, 대기업, 월스트리트에 있었지. 우리에게서 너무나 멀리 있고 알 수도 없는 것들이라 우리는 그저 고개를 가로젓고, 정부를 욕하고, 우박이 내리기 전에 콤바인을 창고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