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지젝의 출사표이자 데뷔작. 지젝에게 다가가기 위한 최고의 입문서이자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사유의 새로운 출발점인 책
이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1989년 저작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를 번역한 것이다. 들뢰즈 이후의 거장으로 일찌감치 지목된 바 있는 그는 해마다 새로운 저작을 쏟아내며, 여러 총서의 책임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그러한 예견을 현실화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이라면 단연 에고 심리학이 득세하던 영미권에서 지젝은 라캉에 대한 가장 뛰어난 이론가이자 대중문화 평론가로서 독자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현상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실천가로서 그는 난해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는 자칫 추상적인 개념들의 집합으로 비춰질 수 있는 라캉의 이론을 현실과 맞닿은 지점까지 끌어들인다. 소수를 위한 전문이론인 정신분석학이 영화나 대중소설 등의 대중문화와 행복한 만남을 통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의 지적 여정에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자 모태라고 할 수 있다. 1989년에 간행된,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후의 책들에서 거장다운 목소리로 듣게 될 추상적인 논의를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접근하기 쉬운 설명적인 어조로 만나게 된다. 이러한 어조와 문체는 풍부하게 소개되는 구체적인 사례들과 더불어, 여느 이론서들과 사뭇 다른 신선함을 선사하며 책 읽는 재미를 북돋워준다.
역자 후기
하지만 이렇듯 친근한 어조 뒤에는 늘 그렇듯이 지젝의 날카로운 시선과 단호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단순히 라캉을 소개하는 위치를 넘어서서 라캉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얘기를 전하는 데 비상한 능력이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라캉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라 라캉에 관한 기존의 관점을 갱신하기 위한 출사표와도 같다. 이 책의 목표는 지젝 자신이 서론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통상 포스트 구조주의자의 범주 속에 포함되는 라캉을 구출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그의 이론에 올바로 입문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와 욕망마저도 환상을 통해 숭고한 대상으로 숭배되는 우리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과 ‘생산’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본격적 대두를 알린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에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온 남자 주인공은 섹스가 끝나면 꼭 여주인공에게 “그러는 너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냐?”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이 뜬금없는 이유는 욕망의 시대라고 하는 1990년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라는 1980년대와는 전혀 반대로 욕망과 성,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실제로는 이 질문이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것이었으며, 1980년대의 저 ‘이데올로기’는 거꾸로 권력에의 욕망일 수도 있음을 이후의 시대의 흐름은 잘 보여주었다. 즉 우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하는 식으로 잘못된 장소와 시간에서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앞의 작품이 그렇게 엄청난 호응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21세기에 질문한다면 아마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너의 환상은 무엇이니?” 즉 1900년대는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현실이 붕괴하고 있는 21세기에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러는 너의 환상은 무엇이니?’라고 묻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즉각 붕괴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전도되고, 물구나무선 듯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는 현실을 ‘비판’하고 ‘정상화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21세기 인간은 경제적 동물을 한참 벗어나 환상의 동물인 것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되어 있다. 지젝의 이 책은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한 전복의 시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라캉을 경유해 헤겔과 마르크스와 새로운 방식으로 접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지젝이 21세기 사상계의 스타로 등장하는 맥락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마르크스의 위기’나 ‘포스트-마르크스’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젝의 손에서 마르크스는 현대 자본주의의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증상을 고안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헤겔은 프로이센이라는 강압적 국가의 고답적인 철학 교수가 아니라 (라캉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히스테리증자가 된다. 물론 이것은 라캉에 대한 전혀 새로운 독법으로 이어져, 라캉은 다시 서양의 고전 속에 위치되며 서양의 고전을 새롭게 종합한 ‘현대의 지성’이 된다. 동시에 이것은 지젝의 논의가 사방에 적을 마주하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수많은 논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지젝이 재미있고, 또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소지이다. 아무튼 지젝만큼 전방위적인 사상가도 드물텐데, 그것은 단지 지젝이 요란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종말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의 사유의 기본 틀이었다면 이제 지젝의 사유틀은 ‘환상에 붙들린’ 21세기의 우리의 사유의 기본 틀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젝의 사유의 원점이자 원형을 잘 보여주는 이 책은 그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쉽게 쓰여져 누구에게나 지젝 독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