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 Humanities/Essay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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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한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독특한 철학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창조경제’에 대해 듣고는 “불쉿(Bullshit)!”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불쉿은 우리말로 개소리라고 옮겨지는 비속어로,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이해가 간다는 듯 웃어넘겼지만 사실 ‘개소리’에는 상당히 복잡한 의미 구조가 숨어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의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는 분석철학 특유의 꼼꼼한 개념분석을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소리’라는 말에 담긴 숨은 의미와 그것의 사회적 파급력에 대해 낱낱이 뜯어본다. 저자는 '개소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개소리와 거짓말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가 왜 개소리를 경계해야 하는지를 언어 분석 기법을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미국의 대선 기간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트럼프의 막말을 둘러싼 현상을 해석하는 책으로 널리 인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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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7 옮긴이의 글 78 해제∥강성훈(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81

Description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 해리 G. 프랭크퍼트 프린스턴 대학교의 도덕철학자가 웬 개소리를?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니? 이게 도대체 저명한 철학자가 논의할 만한 주제인가?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당혹감은 역설적으로,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가벼운 에세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은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교수인 저자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개소리 현상’을 통찰하면서, 개소리가 어떻게 진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고 무책임한 언어문화를 조장하는지 그 위험성을 역설한다. 오늘날 개소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활발하게 생산되지만, 그에 대한 인식 틀의 부재로 많은 사람들이 개소리에 쉽게 현혹된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개소리에 대한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개소리가 만연한 현상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그 두께보다 훨씬 깊이 있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진리에 무관심한 말들의 향연, ‘개소리’의 의미를 분석하다 개소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고, 그렇다고 액면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단순한 헛소리와 달리 화자의 교묘한 의도가 숨겨진 말이다. 이때 숨은 의도란 작정하고 진실을 틀리게 말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말이 맞든 틀리든 그 진릿값은 무시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 말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저자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신의 가호 아래 인류를 위해 새로운 기원을 창조했던 우리의 위대하고 축복받은 조국”에 대해 과 장되게 떠들어대는 독립기념일 연설자를 사례로 든다. 여기서 연설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연설자는 미국사에 대해 청중들을 기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관심은 사람들이 자기를 조국의 기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애국자로 여기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처럼 개소리는 말하는 내용에 대해 기만하기보다는 듣는 이가 말하는 이에 대해 특정한 인상을 가지도록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즉 진실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이 자기 영향력의 확대만을 꾀하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에 관심을 갖지만, 개소리쟁이는 진실을 무시한다 개소리와 거짓말은 어떻게 다를까? 개소리는 거짓말만큼 나쁘거나 위험하지는 않은 걸까?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 거짓말쟁이는 참인 것을 일부러 틀리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진실이 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 진리를 존중하는 셈이다. 또한 거짓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을 들여 세심히 만들어내야 하지만, 개소리쟁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개소리는 본질적으로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내뱉은 말이 허위임이 밝혀진다 해도 개소리는 개소리일 뿐, 거짓말처럼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별생각 없이 함부로 말한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개소리는 이처럼 진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생각 없는 무책임한 언행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 개소리는 심사숙고하며 말하는 참말도 거짓말도 아닌, 참과 거짓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교활하고 파괴적인 언어행위다. 트럼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개소리에 관대한 편이다. 거짓말은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소리에 대해 따지려들면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며 면박을 당하기 쉽다. 하지만 비난당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소리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담론으로 이어질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수천 명의 무슬림 미국인들이 9/11 테러 장면을 보며 환호했다’, ‘살해된 백인들 중 81%가 흑인에게 당했다’는 등의 개소리로 미국 사회의 반이민 정서와 인종차별을 부추긴 트럼프만 보아도 그렇다. 정말 “수천 명”이 환호했는지, “81%”의 수치가 정확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이 참이건 거짓이건 무슨 상관인가. 사람들이 불법이민자와 흑인에게 분노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임이 폭로됐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건 말의 진위가 아니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일이었다. 사실을 제시하여 그 말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것으로는 개소리의 위력을 불식시킬 수 없었다. 개소리는 참과 거짓이라는 진릿값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논리적 공간에서 수행되는 언어게임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에 대응하듯 팩트를 가지고 맞서는 것만으로는 트럼프류의 뻔뻔한 개소리쟁이들을 이길 수 없다. 치밀한 개념 분석과 명징한 문체가 돋보이는 독특한 철학책 이 책은 개소리라는 일상어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에세이다. 일상에서 별생각 없이 쓰는 말의 의미를 파고드는 언어비판은 사회비판으로 이어진다. 4대강 ‘살리기’니 국정원여직원 ‘감금’ 사건과 같은 정치 프레임론의 조어와 ‘사람이 미래‘라고 캠페인을 벌이면서 신입사원까지 구조조정한 어느 재벌의 기업광고에 담겨 있는 마케팅 포지셔닝론 모두 개소리의 범주로 파악될 수 있다. 허위로 판명 나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 및 언론의 언어에서부터 개소리의 바다라 할 수 있는 SNS까지, 거의 모든 말이 개소리화되는 사회 속에서 개소리쟁이들의 허튼 수작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개소리에 대한 개념적 틀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한 줄 한 줄 따라가다 보면 분석철학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이 읽는 맛을 더한다. 흔히 현실과 유리된 철학으로 평가받는 분석철학이 어떻게 현실과 접목되는지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