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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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시가 늘 곁에 있었기에,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었고 발밑의 꽃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다락방에 올라가 아버지가 사다 준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집을 뒤적였고, 외롭던 학창 시절에는 랭보, 예이츠, 헤세, 김지하의 시를 편지지에 베껴 친구와 나누곤 했다. 잡지사에 취직한 뒤로는 매달 다섯 편의 시를 잡지에 싣기 위해 천여 편에 이르는 시를 찾아 읽으면서 마음을 돌보았다. 그러는 동안 가난한 살림을 이끄느라 마음껏 살아 보지 못한 엄마는 뇌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몇 번의 이직 끝에 조그만 잡지사를 차렸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았으며, 사랑하는 딸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 우울과 자책의 나날을 보내던 그 시절, 그제야 아름답게만 읽히던 시들이 품고 있던 깊은 뜻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 힘들다’ 소리가 나올 때마다 어떤 시의 한 문장을 떠올리며 힘을 낸 그는, 마침내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별일 없어 보이는 사람도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며, 우리는 모두 각자 견디며 살아간다. 다행히 그 삶의 갈피마다 시가 있었기에 좌절의 늪에 오래 빠져 있지 않을 수 있었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어설픈 욕망들을 이해해 주었고,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나의 모멸감을 달래 주었다. 그리고 뜻대로 풀리지 않은 일에 화가 날 때 나를 다독여 주었고, 인정받기 위해 기를 쓰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거기서 내가 얻은 에너지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받아들임’이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그럼으로써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나를 조금씩, 천천히 채워 갈 수 있었다.” 내 삶을 뻔한 결말로부터 구해 준 고마운 시들에 대하여 어쨌든 삶은 계속될 것이다. 식사를 하고 치우고 TV를 보고 물건을 사고 잠을 잘 것이며,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인간관계에 실망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내일이면 또다시 출근 지하철을 탈 것이다. 그렇게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용기 있게 다른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겐 정말 시가 필요한지 모른다. 시인들은 삶의 갈피에 숨은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언어의 그물로 건져 올린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빛처럼, 시는 삶의 틈 사이로 찾아드는 작은 기쁨과 위안을 포착하여 우리의 눈앞에 펼쳐 놓는다. 그래서 시를 읽는 한, 삶은 결코 뻔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비록 같은 일상을 반복할지언정, 시가 선물하는 순간의 반짝임을 담아 가는 만큼 삶은 나아지고 충만해질 것이므로. 저자가 지금까지 읽어 온 수만여 편의 시 가운데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시 101편을 추려 이 책에 실었다. 시는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다독여 주었고, 무척 사랑했지만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을 마음에서 놓게 해 주었으며, 이제는 늙어 가는 엄마아버지를 좀 더 이해하게 해 주었고, 예기치 않은 일들로 가득한 세상을 힘내서 살아가라고 등 떠밀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시를 품고 있는 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라고.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시는 무엇인가요? 그가 그동안 곁에 두고 읽어 온 시들을 묶어 보기로 한 데는 ‘누구나 나처럼 가슴속에 넣어 둔 시 한편 있다면, 그 시를 모두 꺼내 놓고 함께 읽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다. 가슴속 시를 나눈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느꼈을 인생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희망을 모두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살아왔노라 대신 나는 이런 시를 읽어 왔다고 고백한다면, 그래서 서로의 아픔을 드러내고 한 번 더 울어 주는 대신에 서로의 어깨를 가만 두드려 줄 수 있다면, 그게 더 힘이 되고 멋지지 않을까. 스물의 시, 서른의 시, 마흔의 시……. 저마다 시 이력서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 본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자기가 아껴 온 가슴속 시를 전달하며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