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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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처음 보려고 했던 풍경을 다시 볼 거예요. 처음 쓰려 했던 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요.” ―2012년 작가와의 만남에서 읽는 내내 중얼거리고 말았다. 나의 은희경, 우리가 바라보고 걷는 등, 한국 문학의 가장 전율적인 작가……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 ―정세랑(소설가)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둘째,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셋째,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폭로할 것이다. 넷째, 적절한 관념어와 압착된 구문으로 대상을 틀어쥐는, 악력握力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다. 이번에도 우리의 기대는 어김없이 충족된다. ―신형철(문학평론가) * 어떤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은희경 7년 만의 새 장편소설 『빛의 과거』 당신에게도 있는, 그런 기억을 만나다 ‘나’는 오랜 친구의 소설을 읽고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삶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 순간순간 빛나지만 모든 것이 서툴던 시절. 그러나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그녀와 내가 본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 “그들 중 누구도 그립지 않지만 또한 잊히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과거의 어떤 진실은, 나의 오늘을 바라보게 한다. “성년이 되어가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낯선 세계에 대한 긴장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기숙사라는 집단은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잖아요. 불완전한 나이에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기숙사’ “기숙사는 출신지와 부모로부터 벗어나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십대 초반 여자 대학생들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지점으로부터 다른 조건을 지니고 떠나왔다. 이제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야 하는 만큼 의식하든 안 하든 자기라는 존재가 다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같은 생활공간에서 그 다름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개별적인 ‘다름’은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pp. 27~28) - 322호 룸메이트 소개 김유경: 국문과 1학년 “내가 온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리 속에 끼어들어 남들과 비슷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주인공.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상경했다. 낯선 상황에서 종종 말을 더듬기 때문에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 그 콤플렉스 탓에 모범생처럼 보이는 것을 선택했지만 진짜 모범생은 아니다. 최성옥: 화학과 3학년 “모성과 처녀성이 다 있는 여인상을 창조했다는 게 무슨 뜻이야?” 322호의 서열 1위.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다. 고시생 남자친구와 그의 보수적인 집안 때문에 고민이 많다. 송선미의 베스트 프렌드. 양애란: 교육학과 2학년 “남자들, 걔네가 뭘 알어. 립글로스 바른 거랑 군만두 기름 묻은 것도 구별 못 하는데.” 미팅을 60번쯤 하고 지금은 세 명의 남자를 동시에 만나는 중. 실전 연애 경험이 많아 때로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남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하며 자기중심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 오현수: 의류학과 1학년 “인간이 다 틀에 넣어 해석할 수 있는 시시한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 집순이. 취향 있는 사람, 말수는 적어도 의사 표현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듯 보이지만 실은 다 보고 있다. 취미는 전용 잔에 커피 마시기, 소녀소설 읽기, 클래식 음악 듣기, 기타 연주. - 417호 룸메이트 소개 송선미: 산업미술과 3학년 “날도 천지빼까린데 공부 쫌 미라놓고 놀 수도 있는 기지.” 늘 물 빠진 긴팔 티셔츠에 판탈롱 청바지 차림. 얼굴 반을 덮는 덥수룩한 사자 머리 아래 엄청난 미모가 숨어 있다. 걸걸한 목소리로 사투리를 쓰며 우스꽝스럽게 행동하지만 어딘지 슬퍼 보인다. 최성옥을 무한 신뢰한다. 곽주아: 가정관리학과 2학년 “성경에도 있잖아.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위해 등잔에 기름을 채워놓고 기다리는 신부들만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어.” 어설프게 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내면은 군인 혹은 꼰대. 특기는 잔소리로, 상대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 동정하고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어 용서해주는 식. 교회 오빠만 많고 사귀는 남자는 없다. 이름은 ‘주님의 아이’의 줄임말. 이재숙: 식품영양학과 1학년 “아니, 제가 예쁘다거나 그런 뜻은 아니구요. 아닌 건 저도 아는데요.“ 집 밖에선 화장실을 못 가는 한약방집 딸. 소박하고 무던하며 호기심이 많으나 눈치는 없다. 해보고 싶은 건 꼭 하는 성격으로 무전여행을 갔다가 호되게 고생한다. 미팅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김희진: 불문과 1학년 “단체생활은 적성에 안 맞지만, 하숙보다 싸니까요.” 서울에서 재수 생활 1년을 거친 뒤 입학. 그래서 신입생 2회 차 느낌이다. 꾸밈이 세련되고 성격도 당당해 보이지만, 도가 지나쳐 직설적이다 못해 까칠한 수준. 늘 바빠서 항상 점호 시간이 다 돼서야 들어오는데 데이트 때문인지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