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막스 에른스트
3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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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막스 에른스트가 콜라주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내세우면서 192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전부 147개의 도판, 전체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에른스트 자신이 '콜라주'라는 방법을 발견한 것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실험은 삽화가 들어가 있는 옛날 책이나 박물도감 혹은 상품 카탈로그 등 기존의 책의 도판을 임의로 잘라내서 다시 붙이는 작업에서 인쇄 가능한 회화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책의 서사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공간적, 시간적 연속성을 갖지도 않으며, 논리적이거나 묘사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기 어렵다. 독자들은 반복되는 동일한 모티브, 이미지들의 연쇄, 그리고 짧은 텍스트의 관계 등을 살피며 자신만의 연결고리를 찾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체적 얼개를 개략적으로 그려볼 수는 있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진, 특정할 수 없지만 때로 '나의 누이'라 불리는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적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수태고지로서 창조와 탄생의 신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죄와 벌, 재앙과 종말을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인물 슈퍼 조인(鳥人)인 로프로프가 등장하여, 수많은 사건들의 현장에서 나타나 때로는 소동을 일으키고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이야기가 결말에 이를 수 있는지 아니면 다시 처음(zero)으로 회귀 하는가를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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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이자 마지막 장 -후기 우리시대의 『신곡』을 만든다는 것

Description

새로운 창조의 원리이자 실천으로서의 ‘콜라주’의 본격적인 시도! 초현실주의의 정수를 담아내면서 동시에 시각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막스 에른스트가 콜라주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내세우면서 192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전부 147개의 도판, 전체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에른스트 자신이 ‘콜라주’라는 방법을 발견한 것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실험은 삽화가 들어가 있는 옛날 책이나 박물도감 혹은 상품 카탈로그 등 기존의 책의 도판을 임의로 잘라내서 다시 붙이는 작업에서 인쇄 가능한 회화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 100개의 머리 또는 머리가 없는 여인-- 콜라주의 의인화 이와 같이 기성의 도판을 소재로 삼는 콜라주는 우선 ‘표절’이라는 행위의 체계화라고 할 수 있으며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를 최소의 것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창조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대중적인 그림(삽화)의 재발견과 결합/소생에 의해 새로운 익명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의 표제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는 그러한 콜라주 자체를 의인화해서 부르는 명칭--대중적인 판화라는 무수의 얼굴/머리(백 개의 머리 100 tetes)를 갖는, 따라서 특정의 작가의 얼굴/머리를 갖지 않는(머리가 없는sans tetes)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 창조와 종말, 탄생과 죽음을 순례하는 원조 ‘그래픽 노벨’ 이 책의 서사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공간적, 시간적 연속성을 갖지도 않으며, 논리적이거나 묘사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기 어렵다. 독자들은 반복되는 동일한 모티브, 이미지들의 연쇄, 그리고 짧은 텍스트의 관계 등을 살피며 자신만의 연결고리를 찾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체적 얼개를 개략적으로 그려볼 수는 있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진, 특정할 수 없지만 때로 ‘나의 누이’라 불리는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적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수태고지로서 창조와 탄생의 신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죄와 벌, 재앙과 종말을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인물 슈퍼 조인(鳥人)인 로프로프가 등장하여, 수많은 사건들의 현장에서 나타나 때로는 소동을 일으키고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이야기가 결말에 이를 수 있는지 아니면 다시 처음(zero)으로 회귀 하는가를 알 수는 없다. * 미래와 과거 속을 헤매는 진정한 인식의 환상 누구의 것도 아닌, 그리고 우리 자신이 재구성하는 신화 비평가 사란 알렉산드리안Sarane Alexandrian은 이 책에 대해 쥘 베르느의 대중소설과 공포영화 팡토마의 이미지들에 의해 표현된 일종의 『신곡』(단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예술의 각 분야의 이미지를 분방하게 결합시킨, 이 그림과 언어의 세계로 들어가고,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백 개의 머리의 환영을 쫓는 것에 의해, 이 새로운 『신곡』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누구의 것도 아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은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을 읽는(혹은 보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우리들 각자에게 고유한 진실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한 조각을 재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되는, 그것도 전에 본 적도 없는 조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져와야 하는, 일종의 직소 퍼즐 같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의심스럽거나 확실한 것으로 쓰여지거나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독자들에게 기묘한 접촉의 힘을 행사하고 있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문학에 의한 회화이며, 동시에 회화에 의한 문학이기도 하다. 아니, 문학과 회화를 어떤 혼돈의 세계에 집어넣은 다음 그것을 무수한 데자뷔의 유령들과 함께 다시 되살려내려는 시도라고 하는 것이 아마도 더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