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카렐 차페크 · Play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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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SF 영화의 걸작들에는 언제나 그 작품을 대표하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영화 [터미네이터]의 살인 병기 T, [스타워즈]의 R2D2, [아이 로봇]의 로봇 군중 들이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대개 철이나 어떤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고, 인간은 아니며, 감정이나 행동이 어딘가 경직되고 어색한 인조물이라는 이미지 역시 바로 차페크의 이 작품 <로봇>에서 원초적으로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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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등장인물 서막 1막 2막 3막 <로봇>의 의미 _ 카렐 차페크 역자 후기 : 로봇, 현대 SF의 탄생 _ 김희숙

Description

<모비딕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차페크 선집> 오늘날 고유명사가 된 ‘로봇’이라는 말은 바로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현대 SF 영화의 걸작들에는 언제나 그 작품을 대표하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영화 <터미네이터>의 살인 병기 T, <스타워즈>의 R2D2, <아이 로봇>의 로봇 군중 들이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대개 철이나 어떤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고, 인간은 아니며, 감정이나 행동이 어딘가 경직되고 어색한 인조물이라는 이미지 역시 바로 차페크의 이 작품 <로봇>에서 원초적으로 제공되었다. 이렇듯 수많은 SF 작품들의 오리지널 모델인 ‘로봇’에 대해 당신이 상상할 수는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이 작품 속에 녹여져 있다. 인간과 노동, 기계와 인조인간, 현대사회와 대량생산, 그리고 생명과 신의 문제 …… 이 모든 묵시록적 드라마와 미래 사회에 대한 차페크의 뛰어난 예언과 묘사는 이 작품을 발표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경이롭기만 하다. <로봇>의 탄생 차페크가 나중에 밝히길, ‘로봇’(robot)이라는 단어는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단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바로 여기에 이미 로봇이라는 존재에 대한 차페크의 어떤 이미지, 다시 말해 인간과 노동과 ‘결핍된 그 무엇으로서의 a’의 기묘하고 철학적인 관계를 엿볼 수 있다. (한 가지 꼭 짚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 원래 이 단어를 창안한 것은 형 요제프였으며, 훗날 사람들이 혼동할까 우려해서 카렐이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아무튼 “과학의 힘으로 인조인간을 만들어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고 판매한다”라는, 너무나 기가 막힌, 그러나 (차페크가 이 작품을 쓴 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 된 발상은, 1920년 어느 날 오후 체코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전차를 타고 가던 차페크의 상상력에서 불현듯 솟아난 것이었다. 전차는 사람들로 빽빽했고, 사람들은 불편하게 서로 부대끼면서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아침 출근길의 서울 지하철 안처럼!) 그 순간 차페크는 그들의 표정으로부터 뭔가 인간과는 다른 존재, 곧 ‘로봇’을 보았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인류는 새로운 존재, 로봇을 만나기 시작했다. 희곡 <로봇>과 연극 <로봇> 이 작품의 초판은 1920년 가을에 아벤티눔(Aventinum)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 1921년에 프라하 국민극장에서 초연된 뒤 차페크가 상당 부분을 수정하여 이듬해 개정판(혹은 확정판)을 냈다. 개정판 이후의 수정은 없었는데, 이 판본은 1931년까지 무려 10판이 나왔다. 연극 은 체코 프라하에서 1921년 1월 25일에 초연되었다. 초연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둔 이 연극으로 차페크는 체코 최고의 극작가로 떠오른다. SF적 요소를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끌어들여 대담하게 전개한 이 드라마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가상공간을 상정한 미래주의적인 무대장치와 그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로봇 연기를 할 때 드러난 동작과 의상, 말투는 대단히 새로운 실험이었다. 1922년 10월 9일, 연극 은 마침내 런던과 뉴욕에 동시 상륙했다. 뉴욕 개릭 극장에서 막을 올린 씨어터 길드(Theatre Guild)의 공연은 그해 시즌 동안 184회나 연속해서 공연될 정도로 경이로운 성공을 거두었다. 로봇의 연대기와 진화 백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인데도, 그동안 우리가 보았던 20세기와 21세기의 과학 발전 및 이에 따른 로봇에 대한 상상력을 이 작품은 이미 모두 담고 있다. 먼저, 로봇은 신을 부정하기 위해 생명체를 만들려던 늙은 로숨의 도전에서 시작된다. 이는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신화나 전설의 상상력을 잇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로봇의 대량생산을 시도하는 젊은 로숨의 도전은, 과학의 상상력이 이윤을 남기기 위한 산업 생산으로 이어지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R.U.R. 회사에서 처음 만들었던 로봇은 그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노동력을 절감시킬 수 있는 일종의 ‘산업용 로봇(생활 로봇)’이었다. 그러다 차츰 전문화된 자기 영역을 갖는 로봇들이 나타나게 된다. 아마 요즘 미국이나 일본에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대체 노동력으로 다양하게 개발하는 산업용 로봇들이 이 단계의 초보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로봇 생산을 끊임없이 개량하다가 이제는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 능력을 갖고 감정을 느끼는 로봇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려는 과학자의 욕구와 로봇들 자체의 ‘내부 진화’ 과정이 맞물리면서 일종의 ‘안드로이드’가 된다. 인간이 되려는 로봇들의 욕망은 결국 인간처럼 살육하고, 이기고, 정복하려는 욕구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배운 방법으로 인간을 멸종시킨 로봇들 중에서 실제로 생식기능을 갖게 된 한 쌍의 안드로이드는 마침내 인류의 후예가 된다. 현대 과학자들이 예측하는 호모사피엔스의 후예, 곧 ‘로보 사피엔스’의 단계인 셈이다. 이렇듯 『로봇(R.U.R.)』은 20세기 SF 문학에서 나타나는 로봇의 진화 과정과 다양한 주제들을 로봇 이야기의 기원답게 모두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과학의 발전 양상을 예언하듯 보여준다. 또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로봇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차페크가 언급했듯이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한 것이다. <로봇>으로 차페크가 말하고 싶었던 것 1922년 런던에서 연극이 공연된 뒤부터, 로봇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논의가 영국에 일어났다. 그 일환으로 1923년 6월 런던에서 이 작품에 관한 공식 토론회가 열렸는데, 차페크는 그 논의들이 자신이 의도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보고, 1923 7월에 런던의 <Saturday Review>에 반박문을 기고했다. 당시 토론에서는 버나드 쇼와 G.K.체스터턴 같은 유명 작가들이 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이들의 해석은 대부분 인조인간 로봇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차페크는, 희곡을 쓰면서 자신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로봇보다 인간이었으며, 이를 통해 ‘과학의 희극’, ‘진실의 희극’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나는 절반은 과학에 대한, 그리고 절반은 진실에 대한 희극을 쓰고 싶었다 ……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개념이 결국에는 인간의 손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게 된다. 이것이 ‘과학의 희극’이다 ……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상이 다른 이상과, 긍정적인 가치가 역시나 긍정적인 다른 가치와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이런 이야기들이 바로 내가 ‘진실의 희극’을 쓰면서 말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이 책, 186~189쪽, <로봇>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