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두 번 떠난다

Shuichi Yoshida · Novel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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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서툰 사랑을 낱낱이 파헤친다. <여자는 두 번 떠난다>에는 총 11편의 사랑 이야기가 들어 있다. 주인공은 모두 남자. 갓 스무 살을 넘긴 이 남자들은 고학생이거나 소위 프리터들로 곤궁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런 이들의 삶에 어느 날 우연찮게 여자가 틈입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열정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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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 속의 여자 공중전화의 여자 자기 파산의 여자 죽이고 싶은 여자 꿈속의 여자 평일에 쉬는 여자 울지 않는 여자 첫 번째 아내 CF의 여자 열한 번째 여자 연예 잡지를 읽는 여자 옮긴이의 글

Description

요시다 슈이치의 담담한 묘사를 보고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 묘사는 세밀하다 못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들추고 만다. 섬세한 묘사와 미시적 통찰의 달인 요시다 슈이치가 이번엔 젊은 날의 서툰 사랑을 낱낱이 파헤친다. [여자는 두 번 떠난다]에는 총 11편의 사랑 이야기가 들어 있다. 주인공은 모두 남자. 갓 스무 살을 넘긴 이 남자들은 고학생이거나 소위 프리터들로 곤궁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런 이들의 삶에 어느 날 우연찮게 여자가 틈입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열정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아직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임시’ 상태의 남자들은 사랑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랑은 알 수 없고, 여자는 더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자기를 기다려주는 여자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아르바이트에서 며칠씩 안 돌아오는 남자. 그는 우연히 자기 집에 머물게 된 여자에게 집착하지만 자기 마음은 보여주지 못한 채 여자의 진심을 떠본다. 비겁한 시험에 여자는 떠나고, 그는 자기의 치사함에 씁쓸한 상념에 잠긴다(장대비 속의 여자).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여자를 어쩌다 보니 집에까지 데려온 남자 역시 여자를 좋아하게 되지만, 여자에게 집착할지언정 여자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한다. 먼 곳에서 여자와 연락이 닿지 않자 그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자기 파산의 여자). 한편 전혀 여자다운 구석이 없는 여자와 왜 사귀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는 고백을 한 남자의 본심은 자기 고백과 다르다. 그는 그저 자신도 자기 마음을 몰랐을 뿐. 서툰 그는 여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조적이다. 그녀가 아무 이유 없이, 한 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조차(죽이고 싶은 여자). 그런가 하면 우연히 공중전화에서 앞 여자의 통화를 듣게 된 남자는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그는 그때 부스에 있던 아름다운 여자가 자기 회사 사원이었음을 알게 되고 호감을 갖는다. 하지만 여자는 그때 자기의 통화 내용에 극도로 예민하다. 그는 그 약점을 이용해 여자의 몸을 탐한다. 순수하게 다가가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서툰 접근 탓에 순식간에 추락하고 만다(공중전화의 여자). 이렇듯 남자들은 자기 마음에 자신이 없다. 그들은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자기 삶에 우연히 찾아온 욕망의 대상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진심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그들의 관계는 구체적이지만 감정은 피상적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 소설은 사랑을 미화하는 대신 미숙과 성숙 사이, 무관계와 관계의 중간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담담하고 날카로운 묘사가 빛을 발하는 이 열한 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그 서투름에 대한 깊은 잔상을 남긴다. 묘사를 통해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파크 라이프]로 권위 있는 순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퍼레이드]로 대중 문학에 수여되는 최고의 상인 야마모토슈고로 상을, [악인]으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요시다 슈이치의 문학적 힘은 무엇보다 묘사에 있다. 그가 그려낸 세상엔 사적인 감정이나 희한한 사건은 없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생생하고 리얼리티는 칼날 같다. 묘사의 힘이 너무도 강해 창밖의 풍경을 그려나가다 보면 그 풍경 속에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깃들고 감성이 스며든다. 그렇게 묘사된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일상을 넘어 그 이면까지 파고든다. 우리가 나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미시적 통찰, 섬세한 묘사, 담담한 기술로 특징지을 수 있다. 소통되지 못하는 사랑의 불안함을 그린 [여자는 두 번 떠난다] [첫사랑 온천] [동경만경], 사랑의 실재를 그린 [거짓말의 거짓말], 출구 없는 현대인의 불안감을 그린 [랜드마크], 범죄 이면의 나약하고 고귀한 인간을 그린 [악인], 모두 그런 특징을 반영한다. 담담하게 흐르는 그의 이야기의 끝에는 언제나 인간 본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얼굴을 드러낸다. 이야기의 배경이 동경이라 해도, 서울이라 해도, 뉴욕이나 타이페이라 해도 상관없을 만큼 현대인의 보편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요인이다. 이제 일본 문학의 오늘을 말할 때 요시다 슈이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소설들은 아주 문학적인 주제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읽히는 몇 안 되는 수작들로 손꼽힌다. 감각적이고 영상적인 대중 소설과 지나치게 미학적이고 엄격한 본격 소설로 양분되어 있는 일본 문학계에서 요시다 슈이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잇는 차세대 작가로, 소설을 균형 있게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