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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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나버린 시들을 불러 모아몇 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다... 고통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시도 인간적인 것이겠지” 한국의 대표 서정 시인 정호승. 그의 42년에 걸친 시업(詩業)을 담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신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신개정판은 근 몇 년간 새롭게 발표한 60여 편의 시들을 추가하여 총 150여 편의 시들을 수록하고 있다. (2003년에 초판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아온 정호승 대표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2008년에 첫 번째 개정증보판이 출간된 바 있다.) 이번 신개정판에는 문학평론가 이숭원의 해설 「현실의 부정에서 사랑의 화합으로」가 김승희의 해설 「참혹한 맑음과 ‘첨성대’의 시학」과 함께 실려, 정호승 시세계의 해석에 깊이를 더하고 있으며 최근에 그의 작풍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일람하게 한다. 1973년 「첨성대」로 등단한 정호승 시인은, 42년간 수많은 시작을 통해 총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실성과 꿈을 저버리지 않는 초현실이라는 역설을 작품을 통해 구현해왔다. 다루는 소재, 주제, 지향점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이라는 첨성대적 시학은 변함없이 그의 시세계를 지켜오고 있다. ‘사막 위에 놓인 첨성대는 시대와 현실의 목마른 척박함에 발을 대고 서 있지만 위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 어떠한 시대, 어떠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향하는 천문정신과 별의 측량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승희의 이러한 해설에 따르면 정호승 시인의 첨성대적 시학이란, 엄혹한 현실에 대한 슬픔이자 그럼에도 빛과 별을 포기하지 않는 영원한 천문정신이자 사랑인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적 감수성은 한국 서정시를 대표해온 시인들의 시적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순수와 정결함에 대한 갈망은 윤동주를, 초기 시에 지배적으로 흐르는 3음보와 4음보의 율격은 김소월을, 선적 부정성의 정신과 역설의 언어는 한용운을 닮았다. 다시 말해 정호승의 시는 한국인들이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어떤 시적 원형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독자들에게 낯익은 느낌을 주면서도 선적 미학과 역설의 언어로 인해 낯선 충격을 동시에 주는 진귀한 시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는 어렵고 어지럽다는 비판 속에 많은 시인들이 독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21세기적 독서 현실과 상관없이 아직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정호승의 시세계에는 이숭원의 해설에서 밝힌 바대로, ‘생명에 대한 깊고도 오랜 관찰과 사색’이 깊은 뿌리로 살아 숨쉬고 있다. 시인이 “몇 날 며칠 어루만져보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 시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선집을 이제 묵직한 한 권의 역사로 만들어냈다. 40여 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을 노래하면서도 그 세월에 걸맞은 울림을 지니게 된 그의 시적 목소리가 우리 시단(詩壇)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해왔는지, 어떻게 수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 시를 사랑하도록 이끌어왔는지 되새겨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