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애절한 아버지(哀しき父)>는 1912년 9월 기세키파(奇蹟派)의 동인지 ≪기세키(奇蹟)≫에 발표한 가사이의 데뷔작이며 초기 대표작이기도 하다. 가난 때문에 처자식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병자뿐인 장마철의 음침한 변두리 하숙방에서 홀로 고독한 하숙 생활을 하면서, 무능한 아버지로서의 절망과 어린 자식에 대한 번뇌 때문에 괴로워하는 무명 시인이 마지막 부분에서 각혈하는 장면을 통해 가족생활과 어린 자식에 대한 애집(愛執)을 떨쳐버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애절한 심리적 갈등과 비애를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무명 시인 ‘그’의 모습을 통해 가사이 자신의 예술과 실생활의 이율배반적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애절한 아버지>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 가사이 문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 자식을 데리고(子をつれて)>는 1918년 3월 잡지 ≪와세다분가쿠(早稻田文學)≫에 발표한 작품으로, 중기 대표 작품이다. 무능하고 가난한 작가 오다(小田)는, 월세가 밀린 탓에 집주인의 대리인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재촉에 시달리고, 친정에 돈을 빌리러 간 아내는 감감무소식이다. 결국 철없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하룻밤 잠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가사이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갈 데도 없고, 수중에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전부인 딱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후미진 술집에서 ‘감흥을 잃어버린 예술가의 악생활(惡生活)’을 탄식하며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한편, 새우튀김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철부지 아이에게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주문해서 먹으라고 호기를 부리는 애절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예술과 실생활의 이율배반과 어린 자식에 대한 애정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모밀잣밤나무의 어린잎(椎の若葉)>은 1924년 7월 잡지 ≪가이조(改造)≫에 발표한 후기 작품이다. 장마가 갠 오전,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생기 가득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밀잣밤나무의 어린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실수투성이 삶을 반성하는 주인공의 서글픈 모습이, 생명감 넘치는 모밀잣밤나무의 어린잎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고향에서 어린 자식들을 돌보며 가련한 여자의 일생을 보내고 있는 아내를 저버리고 오세이(おせい)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경위와 변명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오세이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간 가마쿠라(鎌倉)에서의 행적과 취중 난동 등의 사건, 그리고 과거 가마쿠라 은둔 시절, 사춘기 장남의 뜻밖의 비행 사건과 그 해결 과정 및 지진 경험 등의 회상을 통하여, 고단한 삶에 지쳐버린 주인공의 절망적인 심정과 더불어 생의 본능과 욕망을 솔직하게 고백한 작품이다. <호반 수기(湖畔手記)>는 1924년 11월 잡지 ≪가이조≫에 발표한 작품으로, 가사이 젠조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거녀인 오세이와 심하게 다투고 닛코의 유모토 온천으로 도망치듯 온 가사이가, 그의 예술적인 삶을 위해 여자로서뿐만 아니라 아내로서도 철저히 버림받고 희생당한 아내에 대해 사죄하는 심정으로 쓴 작품으로, 시적 애수미가 절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특히, 후기 대표작인 <모밀잣밤나무의 어린잎>과 <호반 수기>는 작가 자신이 원고지에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제삼자가 받아 적게 한 구술(口述) 작품으로, 문체의 혼용과 정리되지 않은 구성 등 형식적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가사이 자신의 취중 넋두리와도 같은 진솔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1974년 분센도(文泉堂)판 ≪가사이 젠조 전집(葛西善藏全集)≫을 저본으로, 초기·중기·후기의 대표 단편 네 편을 번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