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정신과 간호사가 바라본 런던 속 또 다른 런던
누구나 꿈꾸는 삶의 일탈, 그저 꿈으로만 담아두지 않고 당당히 도전한 독특한 런던 여행 스케치
정신병동은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밀폐된 공간이다. 햇빛 한 줄기 들어오기 쉽지 않은 공간에서 몇 년을 정신과 간호사로서의 자부심과 일에 대한 소소한 보람을 느끼며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불현듯 갑갑한 현실과 스트레스가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정신병동에 오는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을 돌보아 오고, 그들의 치료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일상의 모든 것에 예민하고 날카로워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 정신분열증, 성도착증, 조증 등 정신질환 증세가 있는 수많은 환자들의 치료를 도우며 때론 그들의 친구가 되어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와 감정을 이해하는 동안, 정작 자신이 지금의 현실을 감당할 만한 능력 혹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고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숨 막힐 듯한 시간을 떨쳐버려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잠깐의 머뭇거림 끝에 한국에서 짊어지던 모든 짐을 내버려두고 서른이 되기 즈음 런던으로 훌쩍 떠났다.
떠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임의 끝을 모르겠다면,
정답은 그냥 떠나는 거다!
<그림 그리는 간호사의 런던 스케치>에는 정신과 간호사인 문채연 씨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런던의 고즈넉한 정경이 담겨 있다. 런던과 런더너들의 일상적인 풍경은 그녀의 섬세하게 묘사된 일러스트 삽화와 함께 한층 매혹적인 런던으로 다가온다.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때론 사실감이 넘치는 정밀한 필치로 런던의 구석구석에 시선을 놓아둔 그녀의 섬세한 스케치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런던의 거리를 활보하게 된다.
고전적이고 옛것, 옛사람을 사랑하는 그녀의 취향이 선택한 곳은 어찌 보면 런던을 여행하는 이라면 누구나 가볼 법한 노천시장 코벤트 가든, 레튼홀 마켓, 노팅힐, 리치먼드 파크, 비틀즈의 거리 애비로드 등인데, 그녀의 스케치가 사진에 덧입히면서 인류의 영원한 문화재 보고라고 알려진 대영박물관 속 조각상과 유물들이 그 존재만으로도 숙연해지는 오랜 역사를 선보이기 시작하고, 런던 아이에서 바라본 확 트인 런던 시내 광경을 통해 낡아버린 전통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겸허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런더너의 인생이 그려지기도 한다. 또 내셔널 갤러리의 45번 방에 있던 고흐의 그림을 마주하면 갤러리 밖 런던의 거리가 고흐의 붓끝에서 그려진 스케치 안은 아닌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Mr.런던과 함께 떠나는 간호사의 특별한 스케치 여행
심지어 대영박물관과 마주보던 스타벅스에서 먹던 커피 한 잔이나 늦은 오후에 갓 구어 낸 스콘 한 조각과 홍차, 영국 아저씨 그레고리 집안에서 흘러나오던 국민 가수 베라 린의 노랫소리마저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는 소중한 인생의 작은 선물로 변한다.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선술집 지 올드 체셔 치즈, 예술과 낭만을 사고파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거리 코벤트 가든, 로맨틱한 키스의 명소 빅벤, 고서적이 늘어선 세실 코트에서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돈트 북스 등 발길 닿는 대로 걷던 그녀는 가만히 멈춰 서서 런더너들의 삶과 표정을 멀리 우두커니 떨어져 바라보며 현실의 부담감을 떨쳐버린 제3자의 여유로움을 느껴보기도 하고, 때론 그들과 함께 같은 공간 안에서 웃고 떠들며 마치 태어날 때부터 런더너였던 것 마냥 천연덕스러워져 보기도 한다. 소호에서 비에 흠뻑 젖은 채 마주하게 된 게이와 나눈 진솔한 대화나 커피숍에서 만났던 바리스타와의 미묘하면서도 어색한 이별, 런던의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이 건넨 그림 한 장 같은 사소한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런던의 건축물과 예술품이 주는 영감, 런더너들의 사고방식, 느낌, 감정 등 모든 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런던에서 우연히 마주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들이 한 편의 시처럼 쓰여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보석이고 그 보석이 우리가 찾는 진정한 행복인지도 모른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진지한 사색을 즐기는 그녀는 자신이 들렀던 곳의 거리지도와 런던의 거리 곳곳에 숨겨진 명소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소 침잠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페이지의 중간에 하나씩 삽입된 카툰은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다른 이의 사연을 들어주는 일에 익숙한 그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런던 이야기는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한 매력의 목소리로 전해져 마음에 고요히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