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정조 이산의 결혼식을 공개합니다. 훗날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 22대 임금으로 등극하는 정조 이산은 왕세손 시절 결혼을 합니다. 세손빈은 감사 김시묵의 딸 효의후 김씨였습니다. 그의 결혼식 장면은 당시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상세한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158쪽 이하) 지극히 검소하게 혼례를 치르라는 영조의 명에 따라 그의 결혼식 행렬은 총인원 394명과 92필의 말이 세손빈의 가마를 호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검은 천으로 만든 드리개를 쓴 상궁들, 화려한 색채의 군복에 무기를 든 호위군, 왕세손빈에게 내리는 교훈을 옥에 새겨 만든 책(옥책)을 실은 가마 등이 모두 상세하게 그려졌습니다. 이처럼 왕실의 혼례를 기록한 의궤를 <가례도감의궤>라 하는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12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7건, 그리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13건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실의 의궤, 의궤의 꽃 반차도 조선왕조가 남긴 빛나는 유산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의궤입니다. 의궤의 문화사적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2007년 6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왕실 행사의 기안에서부터 진행과정, 각 부서 간에 오고간 공문서, 왕의 지시와 신하의 건의, 사용된 물품과 물품을 만든 사람과 소요된 비용 등이 상세히 적혀 있는 의궤에는 이 모든 것이 집약된 행렬도가 그림으로 들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반차도이며, 의궤의 모든 내용을 상세한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반차도는 곧 의궤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가례도감의궤와 그 반차도의 미술사적 고찰입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 턱없이 부족한 연구 성과 2007년 8차 세계문화유산 자문회의에 참석했던 서경호 교수는 의궤가 왜 지역유산이 아닌 세계유산이 되어야 하는지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느라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려 900여 종 3600여 책 이상 되는 방대한 의궤 자료에 대해 국내에서 출간된 연구 성과는 한영우 교수를 비롯한 두어 명 역사학자가 쓴 개론서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2007년에 열린 세계문화유산 기념 심포지움에서는 연구성과보다는 장래 연구과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의궤가 기초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복식, 음식, 건축, 공예,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정밀한 연구의 필요성이 강도 높게 제기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는 이 중에서 미술사 분야의 기준이 될 만한 기념비적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반차도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 의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반차도에 대한 연구는 이성미 교수에 의해 20여 년간 이루어졌다. 저자는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의궤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특히 의궤의 미술사적 측면에 기준이 될 만한 논문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2006년 위 연구원을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보다 폭넓은 자료, 보다 체계적인 연구로 나아갔다. 그 결과물인 이 책을 통해 왕실 혼례의 기록인 가례도감의궤에 실린 반차도가 거의 전부 일반에 공개될 수 있게 되었고, 가례반차도의 특징과 내용, 시대별 변화 양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이후에도 그의 연구 성과는 왕의 초상화를 그린 과정이 담겨 있는 <어진 관련 의궤와 미술사>, 왕실의 잔치를 기록한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 주요 내용 의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현재 남아있는 의궤의 현황과 종류에 대해, 그 종류를 간략한 표로 정리하고, 각 종류별 내용을 소개하였다. 가례도감의궤를 비롯한 진연,진찬의궤, 산릉도감의궤 등이 무슨 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현재 의궤들이 어느 곳에 얼마나 소장되어 있는지, 그 연유는 어떻게 된 것인지를 간략하게 요약하였다.(제1장) 가례도감의궤에는 무엇이 실려 있나 여러 의궤들 중에서도 특히 왕실 혼례의 기록인 가례도감의궤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의궤에 수록된 반차도에는 혼례 절차 가운데 간택된 처자가 별궁에 머무르다 왕실로 들어오는 행렬이 묘사되었는데, 문무백관, 각종 의장, 악대 등이 길고 화려하게 그려졌다. 이외에도 혼례 때 사용된 병풍들, 각종 의장기 제작에 관한 상세한 기록, 행사 참여자 및 물품 생산 종사자에 대한 기록들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어떤 절차에 의해 얼마나 많은 가례도감의궤가 제작되었는지, 반차도는 얼마나 그려졌는지, 그 의궤들은 현재 어디에 어떻게 소장되어 있는지를 상세하게 정리하였다.(2장) 시대별 반차도의 현황과 특징 임진왜란 이전의 의궤들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가례도감의궤 가운데 가장 오래된 1627년 소현세자 가례도감의궤에서부터 대한제국 시기 1906년 황태자 가례도감의궤에 이르기까지 남아있는 모든 가례도감의궤들에 대한 분석과 그 특징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 실렸다. 시기별로 1600년대, 1700년대, 1800년대로 나누어 각 시기의 가례도감의궤와 반차도의 특징을 살피고, 그 변화 과정을 비교하였다. 왕비 혹은 세자빈이 궁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위주로 하는 의궤 반차도의 기본적인 유형은 1600년대 반차도에서 이미 마련되었으며, 이후 1759년 영조의 가례반차도에서는 신부를 마중하는 왕의 행렬이 추가되어 이후 반차도의 전형이 되었다. 각 반차도 각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과 기물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제3장~제6장) 반차도의 회화적 기법 가장 많은 인원이 등장하는 철종 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는 무려 1922명의 인물과 559필의 말이 등장한다. 이 많은 인원과 기물들을 어떻게 그렸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연구 결과 그 비밀은 반차도 제작 기법에 있었다. 초기의 반차도들은 손으로 직접 그렸고, 분량도 8면에 불과했으나 후대로 가면서 판화 기법이 응용되었고, 면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즉 인물이나 말의 윤곽선은 도장을 만들어서 찍고, 그 안에 채색을 가미하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1800년대에는 오히려 판화 기법이 위주가 되고 특별한 변화 요소들만 육필화로 그렸다. 의궤의 각 장면들을 비교 분석하여 구도와 채색, 회화 기법의 상세한 측면들을 밝혔다.(제7장) 새롭게 발굴된 조선의 화가들 일제시대에 오세창 선생은 사라져가는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근역서화징과 화사양가보록이라는 빛나는 저작을 남겼다. 후자에 실린 조선조 화가와 서예가 명단은 총 189명으로, 여기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조선조 화가의 거의 전부가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의궤 연구 결과 1627년부터 1906년까지 가례도감의궤에만 수록된 화가들이 무려 234명이었고, 그 중에서 화사양가보록은 물론 어떠한 서화가 인명사전에도 수록되지 않은 화가들이 142명으로, 가례도감에 참여한 화가 가운데 약 60.6%는 처음 이름이 알려지는 화가들이다. 이 책에서는 그 명단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느 해에 어느 도감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일목요연한 표로 정리하였다. 또한 이들의 직책의 변화, 상급의 종류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제8장) 반차도 컬러 도판 가례도감의궤에 수록된 반차도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대 규장각,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등에서 모두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일반인의 열람이 어렵다.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 중요한 반차도를 정밀 촬영하여 풀 페이지 컬러 도판으로 수록하였다. 반출은 물론 사진 촬영의 조명까지 엄격히 제한된 고서실에서 직접 촬영한 도판들이 수록됨으로서 이제 누구나 조선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1627년 소현세자 가례도감의궤 반차도 8면 전체, 1651년 현종 가례도감의궤 반차도 12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