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황시운 · Novel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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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으로, 황시운의 장편소설이다. 가수 서태지를 삶의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있는 왕따 여고생의 좌충우돌 드라마를 발랄하면서도 깊이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생생한 디테일들이 돋보이면서도 여러 사회문제에까지 시선을 확장하는 솜씨가 빼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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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태지와 슈퍼울트라 개량돼지 Pro-Ana의 철칙 Anorexia Nervosa에 이르는 길 차고 날카로운 달 작가 인터뷰 | 서유미 심사평 작가의 말

Description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창비장편소설상의 제4회 수상작인 황시운 장편소설 『컴백홈』이 출간되었다. 『컴백홈』은 가수 서태지를 삶의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있는 왕따 여고생의 좌충우돌 드라마를 발랄하면서도 깊이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생생한 디테일들이 돋보이면서도 여러 사회문제에까지 시선을 확장하는 솜씨가 빼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높은 완성도와 더불어 한번 손에 쥐면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될 만큼 흥미진진한 이 작품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새로운 이야기꾼의 탄생을 목격하는 즐거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열입곱살 유미는 몸무게가 13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여고생이다. IMF로 실직한 이후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답답한 아빠와,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욕설과 잔소리를 퍼붓는 히스테릭한 엄마 사이에서 먹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달래다 살이 찐 그녀는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이 붙은, ‘학교 공식 지정 왕따’이기도 하다. 사흘이 멀다 하고 유미에게 상납을 요구하고, 그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척추가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근자근 밟”아대는 일진 패거리의 짱은 다름아닌 유미의 하나뿐인 친구 지은이다. 지은은 말을 더듬는 탓에 유치원 시절부터 왕따가 되어 유미와 단짝으로 지냈지만, 이제는 화려한 외모와 깡으로 학년 짱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유미는 유일하게 말상대가 되어주고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는 지은을 여전히 각별하게 느낀다. 작가는 대학졸업 후 학원강사로 일하며 학생들을 지켜봐온 이력을 십분 활용해 마치 같은 또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지금 십대들의 행동방식을 생생한 언어로 그려낸다. “야 좆밥! 너 요새 다이어트하냐?” 빳빳한 만원짜리 다섯 장을 고이 접어 쥐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년은 나를 순순히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영화년의 비위에 가장 맞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씨발, 대가리 굴리지 말고 묻는 말에 재깍재깍 대답해. 요새 다이어트하냐고, 이 썅년아!” “음…… 그게 저…… 다이어트를 한다기보다는…… 그게, 그냥 좀…… 여름이다보니까 입맛도 없고……” “우물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이 씨댕아! 근데, 네가 입맛이 없다고? 씨발, 똥도 처먹는 년이 입맛이 없단다.” 영화년의 말에 나머지 패거리가 낄낄거렸다. 급식시간에 새 모이 쪼듯 조금씩 떼어먹은 밥알들이 일제히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영화년의 눈치를 살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패거리와 함께 낄낄대던 영화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99면) 유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도 높은 따돌림과 폭력은 이제껏 흔하게 볼 수 있던 자극적인 소재적 차원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부재한 지금의 씨스템을 환기하는 기제로 기능한다. 학교 안팎에 만연한 승자독식의 논리는 청소년들에게도 비단 성적만이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도 철저한 경쟁과 배제를 야기한다. 절망적인 현실에 환멸을 느낀 유미는 서태지를 유일한 삶의 희망으로 삼는데,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유미가 서태지에게 기쁨을 넘어 구원의 손길을 발견하는 장면들은 살아가야 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하고 커다란 절망에 빠진 사회적 약자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척박한 현실을 부각한다. 90년대의 문화적 아이콘이자 수많은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가 2011년을 살아가는 십대의 희망이라는 설정이 더욱 극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텔레비전에서 그의 컴백 스페셜이 방송되었다. 인터뷰와 공연장면이 교차편집된 방송에서 그는 시종일관 온화한 모습이었다. 언뜻 시시한 질문에 어울리는 평범한 대답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방송 내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메씨지들을 전해왔다.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 이야기 중간중간 이어지는 작은 손짓들, 간혹 카메라를 응시하는 순간의 눈빛 같은 것들에서 나는 그의 또다른 목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화면 속 그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단단한 유리벽 너머의 그와 눈을 맞췄다. 비로소 그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89~90면) ‘서태지 키드’의 잔혹발랄 가출기 유미는 저토록 위대한 서태지가 분명히, 자신에게 끝없이 가혹한 고통만을 강요하는 이 남루한 현실세계가 아닌 저 도저하고 차분한 달에서 왔을 거라 믿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서태지와 함께 달로 가기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아무리 위대한 서태지라 할지라도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를 보듬어주진 않을 것임을 알기에. 혹은 “슈퍼울트라 개량돼지이기 때문에 왕따가 된 것인지, 왕따이기 때문에 슈퍼울트라 개량돼지가 되어버린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35면)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을 찾기 위해. 소설은 의식적으로 거식증에 걸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유미의 심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서태지라는 존재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유미의 다분히 비이성적인 사고에 우리가 어느새 아프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감내해온 시간들이 괴로웠음을 이미 체감한데다, 이후의 행위들이 너무도 처절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임이 실감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냉장고의 문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쉽게 열렸다. 냉장고 가장 위칸에 놓인 커다란 통엔 임신부들이 만든 케이크와 쿠키가 가득했다. 그 아래로 감자볶음과 아직 찢어놓지 않은 장조림덩어리 같은 밑반찬들과 두툼한 어묵봉지가 보였다. 밝은 빛과 함께 차가운 냉기를 쏟아내는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 있도록, 더이상 음식 앞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있도록, 생닭의 배를 가르듯 내 배를 갈라 쩍 벌려놓고 기름 낀 내장들을 남김없이 긁어내고 싶었다. 이토록 짧은 순간에 별다른 계기도 없이 그동안의 노력과 다짐 들이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91면) 힘겨운 현실에 위태로이 서 있던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녀가 가출하고 나서 생활하게 되는 ‘둥지’에서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장된다. 혼전 임신을 한 지은이 입소한 미혼모 보호시설 ‘둥지’에서 유미는 다른 이들의 아픔과 마주한다. 일진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이 평범하게 변해버린 지은의 모습이 마땅찮기만 했던 유미이지만 그녀는 곧 그 변화가, 지은이 뱃속에 든 생명을 어떻게 할지─뗄 것인지, 돈을 받고 팔 것인지─를 늘 고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적응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갈 데 없는 또라이”로 보이던 열네살 미혼모 ‘배불뚝이’가 정말로 갈 데 없는 외로운 상황에 급격히 침울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도무지 좋게 봐줄 구석 없이 냉랭하기만 한 ‘미영’이 아이를 잃은 절망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물을 참는 것을 알아가면서 유미는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작가가 비만과 왕따, 폭력 등에 대해 소재적 수준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사회적 함의를 이야기하고있음은 앞서 언급하기도 했거니와, 유미가 집이라는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소설은 간단치 않은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폭력과 따돌림에서는 간신히 벗어났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 허기와 식욕과의 투쟁, 여전히 한심하고 그악스러운 아빠 엄마의 존재, 불투명하기만 한 자신과 친구들의 미래 등 닥쳐오는 새로운 문제들 앞에서 과연 유미의 다이어트는 성공할 것인가. 그녀는 서태지와 함께 달로 갈 것인가, 혹은 또다른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는 유미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과제를 던진다. 돌진하는 새로운 이야기꾼, 우리가 기다려온 젊은 소설의 탄생 십대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컴백홈』은 여타의 성장소설과 분명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우선, 작가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성장소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을 심리적인 변화보다 오히려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