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

김준현 and other · Kids
120p
Where to buy
Rate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먼저 등단한 김준현 시인의 동시집이다. 시를 쓰는 동안엔 처음 가 보는 시간-공간을 걷는 여행자가 되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밝히는 등불 속에서 자신도 모르던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시인 김준현. <나는 법>에 실린 한 글자 한 글자는 시를 읽는 독자에게도 그와 가까운 경험을 안긴다. 아이, 어른의 경계 없이 읽히는 동시, 현실에서의 경험만큼이나 선명하게 하나의 경험으로 남는 동시, 읽고 난 다음 아주 조금,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에 자신만의 이미지 하나를 남게 하는 동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인은 “마침표까지는 아직 멀고 먼 말들”을 부려놓는다. 짝사랑하는 아이의 집 앞을 맴도는 아이 곁에, 얼마 전 죽은 카나리아를 기억하는 아이 옆에, 쉬는 시간 아무하고도 관계없는 사람처럼 앉은 아이 옆에, 아스팔트로 기어 나온 지렁이의 심장 옆에,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의 배꼽 옆에.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동시를.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동시를 선사한다.

Author/Translator

Table of Contents

1부 나는 법 웅크림 씨 일 바다, 소리 수학 시간-소행성 B612 어떤 빗방울 2부 물방울 연주 김에서 밥까지 주의사항 줄넘기 풍향계 둥글둥글 별 그림 귀 빠진 날 문제 7번 인디언 아이처럼 3부 한글 공부-이응(ㅇ) 한글 공부-꼬리 한글 공부-미음(ㅁ) 한글 공부-이(ㅣ) 한글 공부-기역(ㄱ) 양반 홍길동 말에도 뼈가 있을까? 가분수 동그란 것 4부 채굴 만나고 싶은 너 간지럼 비행 구멍 꽃주름 셀카 아무것도 안 보여 “빨래” 꼴찌 오늘은 5부 봄, 가까이 젓가락 행진곡 다섯 개의 심장 0원이 영원히 태엽 딸꾹새가 사는 새장 여행자 해설

Description

연을 띄우려면 내게는 긴 활주로가 필요해요 무당벌레가 높은 곳을 찾아 기어오르는 것처럼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뚫고 힘껏 뛰어오를 때처럼 활짝 지느러미를 편 가오리 연이 떠올라요 얼레를 돌리면 바람이 감겼다가 풀리고 몽골에서 온 바람인지 독수리만큼 묵직한 게 걸렸는지 팽팽해지는 실 덥석, 구름이 물고 있는지도 몰라 구름으로 연결된 전화선을 타고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엄마 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파닥파닥 떠는 걸 보니 추운가 봐요, 그곳은 새가 없는데 새장이 있듯이 엄마가 없어도 엄마 눈빛이 남아 있듯이 가오리가 없어도 가오리 그림자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몽골까지 페루까지 우리 함께 여행을 가요 새들이 지나는 길목에 물고기 한 마리를 놓아주면 언젠가 바람이 될까요? 활주로의 끝에서 나는 눈이 먼 하늘로 날아가기 직전이에요 _「나는 법」 전문 제5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_『나는 법』 동시집 출간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공모전인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다섯 번째 의미 있는 걸음을 떼었다. 그동안 새로운 캐릭터와 에너지를 발산한 『어이없는 놈』(김개미), 관습적인 상상력을 벗어 버린 『엄마의 법칙』(김륭), 동심 파고들기를 성공적으로 보여 준 『나 쌀벌레야』(주미경), 사회 현실을 동시 내부로 깊숙하고도 재미있게 끌어들인 『넌 어느 지구에 사니?』(박해정)를 당선작으로 내놓으며, 그다음에 올 동시의 모습을 기대하게 했다. 제5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에는 예년보다 많은 113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 작품집은 한 권의 동시집 이상”이라는 생각으로 무언가 하나쯤 공부거리를 던져 주고 동시 창작의 열정과 의욕을 충격할 수 있는 작품, 앞으로 우리가 더듬어 찾아가야 하는 길의 변곡점에서 또 다른 동시의 방향을 제시해 줄 작품, 시인의 시선이 대상 속에 치밀하게 들어가 하나하나 공들여 건립한 작품을 찾았다. 그 결과 마지막까지 시소게임을 벌이던 두 편의 작품 중, 반복해 읽을 때 의미가 더 풍성하게 살아나며, 좀 더 낯설고 새로운 에너지를 동시단에 수혈할 『나는 법』을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시가 새롭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인의 시선이 대상 속에 치밀하게 들어가 대상의 디테일한 부분을 들먹여 숨죽이던 시의 숨길을 살려 내고 있었다._권영상(시인) 비유가 압권이었다. 은유는 시에 날개를 달아 주어 세계를 확장하게 한다. 능숙하게 말을 잘하는 것이 새로운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수상자가 그간 우리가 동시라고 믿어 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들을 써내리라 믿는다. _안도현(시인) 여러 번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시인이 배치한 말의 징검돌을 하나씩 밟아 가며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알이 꽉 찬 가재를 손에 쥔 듯한 뿌듯함, 세련된 언어 감각과 미적 구조를 체험하게 된다._이안(시인)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 수상,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동시와 어린이, 그리고 김준현 김준현 시인은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먼저 등단했다. 이후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 읽는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읽는 아이들의 눈, 어른의 질서가 없는 아이들의 말을 만났다. 아이들은 단지 말의 질감이 좋아 괴상한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고,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해석이 틀릴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한 동시를 오히려 더 즐겁게, 잘 읽어 주었다. 어린이의 눈높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을 걷게 됐다는 그. 어린이라는 존재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의 결을 가진 동시를 고민하다,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을 수상한다.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도 좋았지만 길이가 긴 편임에도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 모습이 믿음을 주었다. 가벼운 말장난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소재를 울림과 여운이 느껴지도록 풀어”냈다는 평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시적 말 걸기에 대한 탐구를 어림하게 한다. 품에 간직한 볼펜을 따라 삐뚤빼뚤 곡선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어떤 얼굴들 다 똑같이 생긴 빗방울 떨어지고 싶은 곳은 모두 다르지 분홍 우산 위에서 분홍색 얼굴이 되는 빗방울 노랑 우산 위에서 아기 보름달이 되는 빗방울 유리창에 닭살처럼 돋은 빗방울 -그렇게 추웠니? 풀잎 미끄럼틀을 타고 나무뿌리를 타고 땅속을 구경하다가 빨대 같은 뿌리에 빨려 탱탱한 햇사과 땀으로 흐르는 빗방울 끔벅끔벅 개구리 눈을 닦아 주는 빗방울 혼자 있기 싫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있는 빗방울 그중에는 한참을 서 있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아이 발자국을 채우는 어떤 빗방울 아이의 뺨 위에서 눈물인 척 함께 흐르는 어떤 빗방울 _「어떤 빗방울」 전문 끔벅거리는 개구리의 눈 위에, 방금 딛고 간 발자국 안에 번지는 빗방울의 체온. 어떤 누군가의 호기심, 어떤 누군가의 그리움, 어떤 누군가의 울음, 어떤 누군가의 꿈을 다독이는 빗방울의 몸짓. 빗방울은 김준현 시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그 안의 수많은 ‘어떤’ 얼굴을 내비친다. 우리가 보는 빗방울의 장막 안에, 우리가 아는 언어의 겉껍질 아래 묶여 있던 다채색 얼굴들이 놓여나는 순간 일상의 공간은 시적 공간으로 뒤바뀐다. 똑같이 생긴 빗방울에서 여러 얼굴을 찾아내는 시인의 품에는 볼펜 하나가 있다. 초봄에 빗길에 나온 지렁이를 보다가 지렁이에게 다섯 개의 심장이 있지, 라는 사실을 상기하다가 툭 풀려 나오는 말의 실타래. 시인의 볼펜은 직선처럼 곧게가 아니라 삐뚤빼뚤하게 그 말타래를 몰고 가 그 말타래 위에 올라탄 우리를 뜻밖의 곳에 훌쩍 떨어뜨려 놓는다. 마치 시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행자처럼. 그래서 우리는 여행자의 공책 한 귀퉁이에 웅크린 고양이 등을 쓰다듬을 수 있고 가오리연의 얼레를 돌리며 그리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띄워 볼 수도 있다. 감각세포가 기억하는 이 시적 체험은 실제와 시의 거리를 한층 좁힌다.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에게는 다섯 개나 되는 심장이 있다 “어차피 말라 죽을 건데 왜 기어 나오니?” 심술쟁이 재민이가 말했지만 심장이 다섯 개나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심장 다섯 개가 쿵쾅쿵쾅 빗소리에 빠지면 몸을 S 자로 만들든 ㄹ 자로 만들든 온 힘을 다해 꿈틀거리며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_「다섯 개의 심장」 전문 글씨가 흐릿해지며 나오다 안 나오다 할 땐 말보다 기침이 더 많아진 할머니처럼 툭, 툭 가슴을 두드리자 조금씩 나오는 글씨 글자 밑에 밑줄만 긋는 거 말고 칠판 필기만 받아 적는 거 말고 남은 힘으로 공책 한 귀퉁이에 작은 별 하나를 새겨야지 웅크린 고양이를 낳아야지, 아껴 뒀던 혼잣말을 해야지 볼펜을 쥔 사람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삐뚤빼뚤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지 _「비행」 부분 툭툭 쳐야 나오는 볼펜처럼, 툭툭 가슴을 두드리면, 툭툭 글자를 두드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