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김원영 and other · Social Science
3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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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오늘날 ‘미래’라는 말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보면, 마치 그 미래는 인간의 몸과는 무관하게 전개될 것만 같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채로 움직이는 세상, 첨단 기술을 동원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들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고통도 갈등도 불가능도 없는 편리하고 매끄러운 곳일까? 열다섯 살 전후로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들(보청기와 휠체어)과 만나 ‘사이보그’로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현장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 두 사람은 오늘의 과학과 기술이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각기 청각장애(김초엽)와 지체장애(김원영)를 지닌 채 살아온 시간과 장애권리운동의 자장 안에서 키워온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이 타자, 환경,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과학기술과 결합할 때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다른 내일을 제시한다. 장애인의 인지 세계와 감각, 동작을 중심으로 새롭게 설계한 세계를 상상하는 김초엽, 각기 다른 취약함과 의존성을 지닌 존재들이 더 긴밀하게 접속하여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미래의 기술을 기대하는 김원영. 두 사람은 각자의 오랜 문제의식을 멀리, 또 깊숙이 밀고 나아가 이 세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든 위계와 정상성 규범 너머에서 서로를 재발견하고 환대할 미래를 그린다. 여기, 사이보그라는 상징을 통과해 더 인간적인 미래의 어느 날에 도달할 짜릿한 여행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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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추천의 글 들어가며 _ 김원영 1부 우리는 사이보그인가 1장 사이보그가 되다 _ 김초엽 다이아몬드 행성의 사이보그 남자 | 낯설고도 익숙한 장애인 사이보그 | 향상하는 대신 전환하는 기술 2장 우주에서 휠체어의 지위 _ 김원영 반려종 휠체어 | 거울 앞에 선 장애인 사이보그 | 의족과 휠체어는 몸의 일부일까 | 휠체어가 되어서 3장 장애와 기술, 약속과 현실 사이 _ 김초엽 장애를 극복하는 따뜻한 기술? | “우리는 장애를 종식시킬 겁니다” | 기술은 장애의 종말을 가져올까 4장 청테이프형 사이보그 _ 김원영 화성에서 살아남은 휴먼 | 인간을 넘어선 인간 | 호킹만큼 인간적이지 않다면 |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문제 삼는 존재 | 청테이프 같은 존재들 2부 돌봄과 수선의 상상력 5장 불화하는 사이보그 _ 김초엽 보이지 않는 장애 | 사이보그라는 낙인 | 사이보그는 로봇 외골격의 꿈을 꾸는가 | 사이보그 신체 유지하기 | 단일한 사이보그는 없다 6장 장애-사이보그 디자인 _ 김원영 뼈 공학의 한계 | 향유고래의 뼈와 안 보이는 보청기 | 패션과 디스크레션 | 테크놀로지, 장애, 페티시즘 | 불쾌함의 골짜기를 피해서 | 장애를 디자인하기 7장 세계를 재설계하는 사이보그 _ 김초엽 불구의 기술과학을 선언하다 | 지식 생산자로서의 장애인 | 보편적 설계, 장애 중심적 설계 | 빨대 퇴출은 비장애중심주의일까 | 유튜브와 해시태그, 장애권리운동의 새로운 물결 | 가상공간의 접근성 | 남아 있는 질문들 8장 슈퍼휴먼의 틈새들 _ 김원영 장애를 고치는 약 | 치료를 받아서 캡틴 아메리카 되기? | 매끄러움의 유혹 | 심리스한 디자인과 이음새 노동 | 매끄러운 세계에 균열을 내는 존재 | 덜컹거림을 감수하는 힘 3부 연립과 환대의 미래론 9장 장애의 미래를 상상하기 _ 김초엽 우리의 다른 인지 세계 | 당신의 우주선을 설계해보세요 | 화성의 인류학자들 | 사이보그 중립 10장 잇닿아 존재하는 사이보그 _ 김원영 두 발로 선다면 의존하지 않아도 될까 | 나를 돌보는 로봇, 내가 돌보는 로봇 | 타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삶 | 연립의 존재론 ? 함께 있음을 돕는 기술 대담 _ 김초엽, 김원영 파트너가 되다 | 생존 이상의 이야기 | 장애와 과학기술의 복잡한 관계를 바라보기 | 몸 혹은 존재를 드러낼 계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 장애 경험의 고유성 | 사이보그라는 상징에 관하여 | 인간과 기술문명의 불가분의 관계 | 우리의 삶이 교차한 순간 나오며 _ 김초엽 감사의 말 참고문헌

Description

인간의 몸은 과학기술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서로 다른 신체와 감각, 기술과 환경이 결합해 재설계한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고, 공동체의 생존과 유지, 향상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자연히 과학기술은 더 나은 내일, 위험이나 질병에 덜 노출되고 불편이나 불가능을 최소화한 미래를 목표로 삼는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그리는 미래 역시 물리적 거리나 환경의 제약 없이, 네트워크에 깊숙이 연결된 인간이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설계된 세상을 매끄럽게 누비는 모습이다. 이 낙관적인 그림 속에서 인간은 기술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거나, 타고난 취약함을 각종 기계나 장비, 의약으로 대체‧보완하여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들로 묘사된다. 각기 보청기, 휠체어라는 테크놀로지와 밀접하게 결합하여 살아온 김초엽과 김원영은 세계적인 테크 기업의 엘리트나 기술 관료,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이와 같은 ‘기술 유토피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그 최전선에 기계와 결합한 장애인의 신체를 놓고 ‘포스트휴먼’이니 ‘트랜스휴먼’이니 하는 손쉬운 비유를 끌어오는 논의들의 공허함을 지적한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성과가 질병을 치료하고 손상된 신체의 기능을 개선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삶에서 기계와 결합하는 일은 결코 매끄러운 경험이 아니며, 어떤 기술은 장애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애의 종식을 약속하는 말들은 장애를 가진 몸들이 지금, 여기의 환경과 조건에서 더 잘 살아갈 다양한 가능성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소리를 더 잘 듣게 하는 기술보다 수어나 문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로봇 외골격보다 휠체어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장애인들의 몸은 설령 같은 유형의 장애라 해도 규격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다. (…) 온정과 시혜로 뒤덮인 시선들은 장애인 사이보그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미래적인 이미지만을 기술낙관주의의 홍보 대사로 내세운다. 지금 이곳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언젠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자꾸만 유예한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수어통역을 실현하는 데 최첨단의 놀라운 기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 87쪽 기계와의 긴밀한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이동 방식과 소통 수단, 일상의 지혜를 익혀온 장애 당사자로서, 두 저자는 장애인의 신체와 감각이 기술과 결합하여 새롭게 구성한 정체성, 그 고유한 경험을 과감하게 과학기술과 미래 담론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이는 단지 기술낙관주의의 허구, 폐해를 지적하거나 그러한 논의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조건이 점점 더 기술문명과 깊숙이 결합해가는 시대에 기계와의 연결과 불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축된 환경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덜컹거림, 이음새, 단차를 견디고 통합해온 장애인의 경험이 우리가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단지 손상을 보완하는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장애인의 신체 일부를 구성하여 장애인을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확장된’ 존재, 세계 및 타자와 ‘연결된’ 존재로 정의하는 계기로서 기술을 바라본다면, 모든 인간이 본연의 취약함과 의존성을 안고도 동등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하나로 움직일 때,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휠체어와 결합하고 다시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활동지원사와 접속할 때,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많은 어긋남, 불화, 이음새의 단차를 넘어 결합해본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미래에 ‘증강해야 할’ 역량이다. (…) 나는 장애나 질병 등 취약한 몸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일부 테크 엘리트들이 꿈꾸는 자동화되고 매끄러운 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단차를 용기 있게 드러내고, 어긋난 이음새는 기꺼이 견디는 역량을 지닌 존재로서 말이다. - 250~251쪽 따라서 이 책에서 ‘사이보그’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사전적 정의를 훌쩍 넘어선다. 김초엽과 김원영은 인간과 과학, 기술, 자연, 환경 및 그 밖의 모든 물리적‧문화적 구성 요소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돌보며 함께 살아나가는 총체를 ‘사이보그’라는 상징으로 표현한다. 이 책은 그 최전선에 있는 ‘장애인 사이보그’의 구체적 현실을 살피며 위계 없는 세계, 정상 혹은 표준의 장벽 너머를 상상해보는 지적 여정이 될 것이다. 고치고 메꾸고 덧대고 수선하여 세계를 재설계하는 사이보그의 상상력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SF 소설가로 활동하는 여성인 김초엽은 그동안 자신을 구성하는 이런 요소들과 청각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연결 짓지 못했다. SF를 통해 다른 인지 및 감각 세계를 가진 존재들을 묘사하고 그들이 중심이 된 시공간을 창조하는 일은 자신의 장애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파트너인 김원영을 비롯해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불친절한 세계를 돌파해나가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또 공고한 위계와 정상성 규범을 뒤흔들며 세계의 구조 변경을 요청하는 용기를 마주하면서 비로소 자기 안의 여러 정체성을 연결, 통합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의 신체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과 분리될 수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김초엽은 자기 몸에 연결된 기계들을 재구성하거나 변형 혹은 수선하며 과학기술의 현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장애인들, 장애인의 필요와 접근성을 중심에 두고 도구와 환경을 설계하는 개발자들을 소개한다. 요리의 전 과정을 촉각이나 소리로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진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방, 휠체어의 층간 이동을 위해 경사로를 중심에 두고 설계된 주택,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서비스, 어떤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섬세한 접근성 설정을 갖춘 온라인 게임, 장애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유튜버들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은 더 이상 온정과 시혜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지식 생산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김초엽은 최근 장애학 연구에서 제안된 ‘크립 테크노사이언스’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크립 테크노사이언스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장애 경험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상의 기술을 재구성하고, 세계를 개편하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애인은 단순히 세계의 수용자이거나 세계에 의해 형성되는 이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하는 사람들이다. (…) 장애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 환경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와 공동체를 ‘땜질’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장애학자들은 여기에 ‘장애인 세계 만들기’라는 명칭을 붙였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에 적응하며 환경을 독창적으로 수선해온 작업들 (…) 이러한 일상의 지식들이 제대로 포착된다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취약함과 의존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188~189쪽 이어서 김초엽은 최근의 SF 작품들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 장애인을 둘러싼 세계를 설계하는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SF라는 장르가 각자의 주관적 세계가 불완전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공존하는 미래, 타인의 삶을 애써 상상하며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사고 실험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SF는 다른 존재들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리는 이야기이며, 과거와 미래, 우주와 심해에 인간을 데려갈 방법을 고안하거나 비인간 존재들이 거주 가능한 환경을 설계하는 등 ‘접근성을 탐색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초엽이 도달하고자 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몸의 상태에 위계를 부여하는, 신체와 정신의 유능함만을 추구하는 능력차별주의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