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약 10년 남짓한 짧은 창작 기간에 여러 편의 드라마, 소설 등을 썼지만 생전에 <깨진 항아리> 단 한 편만 공연되었을 정도로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박했다. 클라이스트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그 결과 “지옥이 선사한 절반의 재능”(1803년 10월 5일 울리케에게 보내는 편지)의 결과물인 8편의 단편, 8편의 드라마는 오늘날 독일어권 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중 <암피트리온>은 신화적 소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 준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암피트리온>은 클라이스트가 “몰리에르 소극”이라는 부제를 붙여 밝혔듯 몰리에르의 <암피트리옹>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헤라클레스 탄생 설화를 모티프로 한다.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나간 사이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의 형상으로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 앞에 나타난다. 알크메네는 남편으로 위장한 제우스와 동침해 헤라클레스를 낳는다. 진짜 암피트리온과 암피트리온의 형상을 한 제우스, 즉 가짜 암피트리온 중에서 누가 진짜인지를 놓고 극적 갈등이 유발된다. 몰리에르는 막강한 권력으로 인간의 아내를 유혹한 제우스를 태양왕 루이 14세의 애정 편력에, 아내를 뺏기고도 힘센 아들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암피트리온을 루이 14세에게 아부하는 측근에 비유했다. 그러고는 암피트리온의 부하 조지아스의 입을 빌려 이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면서 극의 분위기를 희극적으로 끌고 간다.
클라이스트는 같은 소재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 인식의 문제로 바라봤다. 두 암피트리온을 놓고 진위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인간은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제우스라는 절대적인 존재의 개입으로 암피트리온 자신도 스스로가 진짜임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과연 유한한 인간에게 완전한 진실에 다가설 힘이, 진위를 가려 낼 판단 능력이 있을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닐까? 인간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것을 통해 재구성된 사실을 순전한 진실로 주장할 수 있을까? 몰리에르가 신화적 배경을 통해 프랑스 궁정 사회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반면 클라이스트는 인간 인식의 한계 문제로 원작을 재해석하면서 <암피트리온>은 고전 비극의 형식과 서사를 따르게 된다. ≪마의 산≫을 쓴 독일의 대문호 토마스 만은 한 강의에서 <암피트리온>에 드러난 클라이스트의 이런 재기발랄함에 경의를 표하며 <암피트리온>이 공연된다면 극장이 아무리 멀어도 꼭 보러 가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