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2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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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시대, 초연결의 시대에 ‘고독’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효용을 제기한 책이다.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혼자 있어볼 기회가 적음을, 문명 세계가 아닌 자연을 경험하기 힘듦을, 소음에 익숙해져 침묵을 견디지 못함을, 타인의 개입과 일의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함을, 차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함을 역설한다. 한마디로 말해, 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인데, 저자 올리비에 르모가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자발적 고독’이다. 여기서 유념할 점은,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는 것이다. 고독은 고립과 유폐의 상태가 아니라, 한동안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내면과 외부 사회를 응시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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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감사의 말 5 프롤로그―홀로 있는 것을 좋아할 수 있을까? 11 1장―도피할 것인가, 말 것인가? 16 고독의 위험|내면적 일탈|영혼의 방랑자|탐험가로서의 순수한 기쁨|어렵지만 가치 있는 경험 2장―내면의 고독 44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묵상과 내면의 고요|고립이 아닌, 타인이 존재하는|소명 없는 수행 3장―애매모호한 사회 72 철학자인가, 인간혐오자인가|인간혐오자라는 딱지|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자기에게로의 집중과 세상의 사용|고독의 결점 혹은 사회의 결함 4장―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서 106 야만적이고 무질서한|정치 행위로서의 은둔|무심한 인간, 소로|소로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소수의 특권인가, 만인의 자유인가|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서 5장―자기에게 다가가는 법 128 은신처|가게와 뒷방을 오가기|자기 집에서 여행자로 사는 법|여행과 모험의 진짜 의미 6장―느리게 자연을 읽는다는 것 153 현재 이 순간의 복음|타인의 거울 안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비상식’을 발휘하라|소리의 풍경|전체를 보는 관찰력 7장―고독하게 연대하며 181 양심적 거부냐, 시민 불복종이냐|올곧은 마음과 정의|오두막의 정치학|고독한 사람에서 연대하는 자로 8장―의지로서의 세상 200 무법자가 숲으로 간 까닭|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세상을 향유하고 사용하기 9장―오두막 학파 214 외로운 나그네의 쉼터|홀로 있으면서도 함께 모여드는|여행자들의 집|결국 함께하기 위해 고독을 꿈꾸는 것이다 에필로그―고독의 힘 236 미주 244 옮긴이의 말?고독의 사용법 263

Description

“고독은 어떻게 내면의 리듬을 조율하면서 타인을 살피고, 사회를 관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마음과 세계 사이의 균형, 자기만의 동굴로 기꺼이 물러나는 용기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다시 돌아오는 회심과 변화의 기술! 인생을 누리고 세상을 사용하는 삶의 단순한 비밀, ‘자발적 고독’ ■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는 방법, ‘자발적 고독’ 『자발적 고독』은 속도와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시대, 초연결의 시대에 ‘고독’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효용을 제기한다.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혼자 있어볼 기회가 적음을, 문명 세계가 아닌 자연을 경험하기 힘듦을, 소음에 익숙해져 침묵을 견디지 못함을, 타인의 개입과 일의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함을, 차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함을 역설한다. 한마디로 말해, 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인데, 저자 올리비에 르모가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자발적 고독’이다. 여기서 유념할 점은,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는 것이다. 고독은 고립과 유폐의 상태가 아니라, 한동안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내면과 외부 사회를 응시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 내면의 자발적 망명이자, 회심과 변화의 기술 책에서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한 사상가들과 탐험가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사상가들은 내면의 광맥에서 세계의 진실을 탐색하는 이들이었고, 탐험가들은 인간이 미치지 못한 영역을 여행하며 자기에게 다가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만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에게 진실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회로 되돌아갈 필요를 느낄 때 고독을 경험한 이들은 이전과는 달라져 있다. 고독은 되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내면의 자발적 망명이자, 회심과 변화의 기술인 것이다. ■ 고독은 왜 오해되었을까 고독은 ‘홀로 있음’과 ‘외로움’의 의미로 읽혀 부정적이거나 가급적 피해야 하는 상태로 이해되곤 했다. 저자 올리비에 르모에 따르면, 근대의 정치사상론이 사회계약론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사회의 구성이라는 측면은 집중 조명되었으나 사회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상태, 즉 은둔 또는 고독은 정상에서 일탈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고독을 선택한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적 인간, 별종 취급을 받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상식’이 고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근거가 된 것이다. 고독의 의미와 가치가 철학과 종교, 정치 영역에 두루 걸쳐 있었음에도, 근대의 사회구성론이 정치사상의 중핵이 되면서 고독의 가치는 잊히고 폄하되었다. ■ 소로의 고독은 자신뿐 아니라 사회를 향한 것이었다 미국 민주주의에 사상적 영감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고향 콩코드에서 멀지 않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 온전히 자립하여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올리비에 르모는 소로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멕시코와의 전쟁을 반대하고, 세금 납세를 거부하는 시민 불복종을 주장할 수 있었던 내적 동기가 월든에서의 경험, 즉 고독이라는 실존적 체험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소로가 불의한 사회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회 제도보다 개인의 양심을 우위에 두었음을 뜻하는데, 사회 정의를 위해 필요한 ‘개인의 양심’은 군중 속이 아닌 오직 단독자적 상황에서의 성찰로부터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정의의 근간이 되는 개인의 양심은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내면화된다. 고독이 개인적 라이프스타일일 뿐 아니라, 사회 참여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고독이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