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사람에게

안태운 · Poem
136p
Where to buy
Rate
문학과지성 시인선 550권. 경계를 무화시키는 언어와 전복적인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안태운의 두번째 시집. "단단하면서도 독특"한 문장으로 "장면의 전환과 시적인 도약"을 일으킨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제35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감은 눈이 내 얼굴을>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서 안태운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언어의 유동성을 따라 산책하듯 이 세계를 거닌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계절 풍경」) 자문하고 "나를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까"(「동행을 따라다니는 풍경」) 고민하는 분열증적 주체의 자리를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안태운은 특정한 대상에 안착하기보다 시적 이미지들이 연결되는 흐름에 주목한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이국 정서」)할 즈음 다시 출발하는 방식으로 어디에도 체류하지 않는 배회의 상태를 지속한다. 이는 화자가 '나'와 '현재'라는 익숙한 시점(視點/時點)에도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폭넓은 변화의 풍경을 자아낸다. 그러므로 <산책하는 사람에게>는 고정된 자아와 체계의 바깥으로 걸어 나가 일상의 이면을 돌아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 여정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생의 예기치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Author/Translator

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1부 빈방의 빛/인간의 소리/목소리/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창문을 열어놓을 때 곳에 따라 비/이윽고 겨울밤/눈 내리고/자장가/안개비/이후 2부 공터를 통해/흰 개를 통해/흘러가본 거울 또 거울을 흘러가서/백설/풍등/열린 창과 열린 문/동행을 따라다니는 풍경/구름과 생물/말/심을 수 있는 마당/방죽으로/호수 눈/더 깊은 숲으로 3부 산책했죠/그 편지를/영상 밖에서/들풀 향기/가을이 오고 있었고/그리고 나는 어떻게 되었지?/물레로/여생 4부 집에서 시퀀스를 연습하세요/귀여움을 잘 아는 친구에게/이국 정서/시산제/사위는 것들 사위어가고/하루/휴일/미래는 수영장/여름을 떠올릴 수는 있었지만……/어느 주말에 이르러 침대와 의자/편지에 대해 편지 쓰는 사람을/행인들 묘사 계절 풍경

Description

흐르듯 세계를 관통하는 시어 정주하지 않는 삶의 이채로운 풍경들 경계를 무화시키는 언어와 전복적인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안태운의 두번째 시집 『산책하는 사람에게』(문학과지성사, 2020)가 출간되었다. “단단하면서도 독특”한 문장으로 “장면의 전환과 시적인 도약”을 일으킨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제35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감은 눈이 내 얼굴을』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서 안태운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언어의 유동성을 따라 산책하듯 이 세계를 거닌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계절 풍경」) 자문하고 “나를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까”(「동행을 따라다니는 풍경」) 고민하는 분열증적 주체의 자리를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안태운은 특정한 대상에 안착하기보다 시적 이미지들이 연결되는 흐름에 주목한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이국 정서」)할 즈음 다시 출발하는 방식으로 어디에도 체류하지 않는 배회의 상태를 지속한다. 이는 화자가 ‘나’와 ‘현재’라는 익숙한 시점(視點/時點)에도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폭넓은 변화의 풍경을 자아낸다. 그러므로 『산책하는 사람에게』는 고정된 자아와 체계의 바깥으로 걸어 나가 일상의 이면을 돌아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 여정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생의 예기치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숲으로 들어갔어요 깊은 숲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어요 길이 없는 숲으로 더 들어가자 오솔길이 나왔습니다 ―「더 깊은 숲으로」 부분 경계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산책자 안태운에게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시집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을 아우르는 텅 빈 기표에 가깝다. 무엇도 아니기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주체인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맞물려 독특한 전이와 확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나는 흰 개마저 잃어버렸네. 옆 사람은 나를 쓰다듬었지. 상심하지 말라고,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내며. ―「공터를 통해」 부분 나는 옆 사람과 흰 개와 함께 공터 바깥을 산책하던 중 흰 개를 잃어버린다. 그러자 옆 사람은 나를 쓰다듬으며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심지어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내기까지 한다. 여기서 ‘쓰다듬다’라는 동사는 하나의 통로로써 역할한다. 옆 사람이 쓰다듬는 대상인 나의 위치를 슬며시 흰 개의 자리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개가 될 수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옆 사람이 흰 개처럼 변모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설득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이처럼 안태운은 개별의 차이를 부드럽게 지우고 존재와 행위를 일련의 동일성으로 연결 짓길 반복한다. 이러한 전개의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을 좇아 새로운 아름다움에 가닿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끝에 이르러 한 번 더 내딛는 발걸음 시인의 산책은 경이로운 장면 앞에서 멈춘다. 그 이미지는 “빈방, 그 사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빈방의 빛」), “침묵 뒤 웃음. 끝없는 인간의 소리”(「인간의 소리」)처럼 공허한 여백을 채우는 음성과 함께 현현한다. 건너편 천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큰언니와 어린아이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을. [……] 언니들에 둘러싸인 채 아이는 사방을 올려다보고 조잘거리고 조잘거림을 듣고, 그럴 때 어떤 기분일까 어떤 충만함일까, 나는 그게 마냥 이어지기를 바랐는데, 그 장면은 떠나가고 어느샌가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계절 풍경」 부분 봄을 맞아 외출한 화자는 아지랑이, 물비늘, 푸른 하늘을 구경하다가 천변에서 여자아이들을 발견한다. 그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를 낯설게 올려다본다. 그것은 어떤 “기분”과 “충만함”일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으나 “마냥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는 “조잘거림”의 “장면”이다. 그렇지만 충일의 순간은 내가 붙박여 있고자 해도 내 곁을 떠나간다.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처럼 간직할 수 없는 풍경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산책하는 사람에게』를 읽는 일은 끊임없이 흘러가버리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 속에서 차마 잊을 수 없는 장면들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제 본 풍경”이 덧없이 지나가버리더라도 그것이 “내일 볼 풍경”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물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