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미지의 갑주를 두른 불꽃 박시하 시의 복화술사 같은 대거리는 ‘아주 조금만 말하려다’가 ‘아주 조금만 더 말하는’ 세련된 방식을 구사한다. ‘어머니’에 대해 아주 조금만 말하려다가 ‘아버지’에 대해 아주 조금만 더 말한 것이 박시하의 첫 시집이다. ―이문재 시인 누군가는 반드시 기록했어야 할 삶의 숨어 있는 장소들. 그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곳마다, 한밤의 번갯불에 번쩍 모습을 드러내듯, 우리 안의 장소와 우리 밖의 고통이 아름다운 윤곽을 얻는다. ―하재연 시인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시하 시인의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문예중앙시선 019)가 출간됐다. 다양한 감각으로 변주되는 이미지를 구사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아왔던 박시하는 이번 시집에서 “보이지 않는 슬픔의 무지갯빛 무늬가 서려 있는”(하재연 시인) 한층 매혹적인 이미지를 55편의 시편들에 펼쳐놓는다. 그 이미지들은 “삶과 꿈, 직립과 비상, 일상과 미적인 것”(조강석, 해설 「달리기의 정서와 지하의 감각, 그리고 이행의 아포리아」)의 경계를 허물고 “검은 새”나 “푸른 지팡이” 등의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이미지 스스로가 시적 상황을 증언하고 이미지로써 독자들을 한껏 매혹시키는 박시하 시인과 그의 문법을, 조강석 평론가는 “이미지의 갑주를 두른 불꽃”이라고 표현한다. 보이지 않는 슬픔의 무지갯빛 이미지의 힘 전동차 속에 가득한 사람들은 직립을 후회하는 걸까? 손톱만큼만 확연히 자리고 싶지만 짓눌린 구두 굽들은 거꾸로 자란다 전동차가 덜컹댈 때 나와 너는 함께 덜컹댄다 오로라 오로라, 오로라 검은 새 한 마리 돌아오며 묻는다 아릅답지 않니? 나는 어느새 울고 있다 오로라를 본 적이 없습니다 발밑으로 검은 오로라가 흘러간다 ―「오로라를 보았니?」 부분 시집의 서시에서 시인은 전동차에 가득한 사람들의 일상과 몽상의 삶을 그려낸다. 전동차 안의 사람들은 “손톱만큼만 확연히 자라고 싶지만” 중력의 조건 아래 그저 서 있으므로 “짓눌린 구두 굽들은” 다만 거꾸로 자랄 뿐이다. 전동차는 덜컹거리며 “오로라/오로라, 오로라”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여기에 비상하는 검은 새와 발밑에 흐르는 검은 오로라의 이미지가 겹쳐 흐른다. 이렇게 시인은 ‘검은 새’와 ‘소리의 오로라’ 그리고 발밑의 ‘검은 오로라’라는 세 가지 이미지로써, 삶의 중력에 혹은 완강한 현실에 얽매인 도시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박시하의 시편들 곳곳에는 짙은 농도의 이미지가 촘촘히 박혀 있으며, 어떤 성마른 진술이나 부가 설명 없이 이미지 스스로가 말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북극의 오로라처럼 보이지 않는 슬픔의 무지갯빛 무늬가 서려 있”으며 “언젠가 꼭 한 번 눈앞에서 만나게 될 것 같은, 나의 생애 한 켠에 품고 있는 무늬”(하재연 시인)들이다. 날아가는 새에게 그림자는 있을까? 지친 앙시앵레짐이 손목을 붙잡는다 불균형이 나를 더욱 자유롭게 하리…… 삐딱하게 앉는다 춥고 어두운 새의 표정으로 ―「검은 새―두 편의 영화에 관한 데자뷰」 부분 날아가는 새에게서 ‘그림자’를 떠올리는 것은 “검은 오로라”와 “검은 새”(「오로라를 보았니?」)의 “검은” 이미지와 겹쳐진다. 조강석 문학평론가가 지적한 대로 박시하의 시에 “삶과 꿈, 직립과 비상, 일상과 미적인 것에 대한 인식의 구도”가 깔려 있다면, 이 검정의 이미지는 다름 아닌 “앙시앵레짐”이고, 기성의 질서이며, 거부할 수 없는 완강한 ‘현실’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시집의 많은 시편들에는 “삐딱하게 앉”아 “춥고 어두운 새의 표정”으로 불균형의 일탈을 감행하는 존재자들이 드러난다. 그들은 때론 “건널 수 없는 건너편”(「슬픔의 가능성)」)을 꿈꾸는 이들이고, “그럭저럭 배가 고파오”는 (「픽션들」)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며, “사랑을 잃”(「사랑을 잃다」)고 두 눈과 마음을 잃은 자들이다. 시인은 그들의 모습을 마법 같은 이미지로써 흐려지게 하거나 혹은 반짝이게 하고 있다. 세계는 우리에 대한 사실이 아니야 어떤 확신일 뿐 단단하고 끈적대고 더러운 사실은, 사실이 아닌 이 모든 사실들을 말하고 싶어 ―「아포리아」 부분 마지막으로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그러나 독자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사태와 상태를 이미 잊게 만드는 이행”이라고 말하며, 박시하의 시편들에 내장된 아포리아를 지적한다. 박시하의 시는 결국 압축적 이미지를 통해 “사태로부터 정서적 상태로, 정서적 상태로부터 감각의 운동으로, 감각의 운동을 통해 시적 사실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완주한다. 그러니 이는 결국 아포리아를 낳는다. 사태로부터 사실로의 이행은 이미지를 통해서, ‘사실이 아닌/이 모든 사실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해설 「달리기의 정서와 지하의 감각, 그리고 이행의 아포리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