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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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저지를 때, 그의 내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악, 평범함과 잔혹함의 두 얼굴 그 어둠의 깊이에 관한 인문학적 탐색 악이란 무엇인가, 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프리모 레비의 저작,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를 다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인종 차별과 인권 탄압에 대한 데즈먼드 투투의 저술이 철학자로 하여금 악이 무엇인지, 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켰다. 이 책은 20세기 심리학의 성과와 인간의 악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의 성찰을 경유하는 한 철학자의 사유의 결과물이다. ‘악’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위험한 이유 악행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무관한 곳에서 벌어지고, 악인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종류의 사람일 거라는 관념은 악을 비난하기에 편리한 심리적 근거를 형성하지만, 악을 이해하는 시도를 가로막는다. 흥미로운 점은 악과 악인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는 가해자들도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악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관념은 악의 이해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잔혹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악의 장벽 이론을 통해 악을 철학적으로 정초하고자 저자는 심리학에서 개발한 폭력 억제 기제에 영감을 받아 ‘악의 장벽 이론’(the barrier theory of evil)을 철학적 개념으로 제시한다. 악한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장벽이 지닌 금지와 억제를 넘어설 수 있다. 악의 장벽 이론은 악을 규정하고 정의하기보다는 행동의 동기가 갖는 성격으로써 악을 설명한다는 차원에서 철학적이다. 국가의 소시오패스화와 잔혹 행위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숭고함이 개인의 양심을 무기력하게 만들 때 학살은 용인될 수 있다. 한편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학살(킬링필드)이나 르완다의 투치족 학살은 권위를 가진 국가가 부재한 상태에서도 집단적 폭력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저자의 사고실험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데,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하는 소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애덤 모턴은 비관적 답변을 내놓는다. 가령 부유한 국가는 빈곤한 국가의 참상을 무시하거나 방조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일지라도, 부유한 국가가 빈곤한 국가를 돕게 강제할 수는 없다. 이를 국가의 소시오패스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민족 국가에서 소수민족 탄압으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테러도 마찬가지로 정상국가에서 잔혹한 학살이 언제든 예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악과 대면하기, 진실 규명과 자기 성찰 저자는 무엇보다도 사건의 진실 규명을 강조한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행해진 범죄와 인권 유린을 조사하면서 가해자 처벌보다는 진실 규명을 우선시했다. 남아공이 불완전하지만 짧은 기간에 사회 통합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화해를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VFR: Murder Victim’s Families for Reconciliation) 같은 단체는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사형제 폐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