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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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갖가지 추측 속에 후계자로 부상했던 김정은은 아버지의 직함을 거의 대부분 계승했으며 군 최고위 간부를 교체했고, 2013년 말에는 당과 군의 실력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는 젊은 지도자의 행보에 시시각각 주목하고 있으나 그가 곤란에 빠진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균형 잡힌 역사 인식과 서술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변화해가는 북한의 현재를 인식할 틀을 제공해주는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는 동북아 근현대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한일관계의 전면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온 실천적 지식인 와다 하루끼 교수의 30년에 걸친 북한사 연구를 집대성한 저서다. 김일성 시대 북한의 체제를 ‘유격대국가’로 정의하고, 그 체제가 김정일에 이르러 ‘정규군국가’로 이행했다는 분석으로 북한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 와다 교수는 이 책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으로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주의화 과정을 거치며 북한 체제가 변화해온 궤적을 정치·군사·경제·문화·외교 영역에서 다각도로 조명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北朝鮮現代史』(이와나미출판사 2012)의 한국어판인 이 책에는 일본어판에는 없는 2년여의 ‘김정은 시대’를 정리해 보론으로 담았다. 단순한 번역본이 아니라 증보판인 셈이다. 감추어진 국가, 북한을 읽어내다 1992년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이 처음 소개된 이후로 와다 하루끼 교수의 저서는 지난 20여년간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02년에 출간된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인데, 일본에서 1998년에 출간된『북조선: 유격대국가의 현재(北朝鮮: 遊擊隊國家の現在)』에 보론을 더하여 번역한 것이었다. 이후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종언에 따른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1945년의 해방 및 소련 점령으로부터 북한의 기본적인 체제가 확립되는 1961년까지의 역사를 명확히 규명해낼 수 있는 양질의 자료가 추가로 입수되었다. 그러한 자료와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한 것이 이 책 『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다. 와다 교수는 뜻밖에 서문에서 과거 자신이 “김일성 사후의 체제변화를 포착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말로 책의 포문을 연다. 이 고백은 매번 저술을 거듭할 때마다 연구 성과를 꾸준히 업데이트해온 성실한 학자에게도 북한의 현재를 해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낸다. 북한은 내부정보를 완전히 비밀에 부치는 데 성공한 예외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와다 교수는 북한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생각하기’와 ‘모델 분석’ 방법을 취했다. 전자는 내부자료가 있는 시기의 역사를 연구해 내부자료가 없는 현재의 체제를 추측하는 것이고, 후자는 북한 체제의 다양한 모델을 채용해 유효성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가설로서의 모델이 유효하다고 입증되면 이를 이용해 자료의 공백을 추정할 수 있다. 저자는 조선로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과 이론지 『근로자』 그리고 북한의 공식자료들을 분석하는 것을 기본으로 소련 및 동유럽 국가사회주의 체제와의 비교연구, 지도자의 계열과 파벌 및 인사이동에 대한 주목, 새어나오는 내부정보 활용을 병행해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취급되어온 북한의 실상에 대한 내재적 이해를 제공한다.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다시 새 지도자의 시대로 이 책은 북한의 역사를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기(1932~4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기(1945~48), 한국전쟁(1948~53), 전후 부흥 및 사회주의화 진행기(1953~61), 유격대국가 성립기(1961~72), 김정일 등장 이후 유격대국가의 진행기(1972~82), 김일성 죽음 이전 경제위기와 고립이 가속화된 시기(1983~94),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기(1994~99), 김정일 죽음 이전까지의 격변기(2000~12)로 나눈 뒤 보론에 김정은 시대에 대해 덧붙였다. 가능한 자료를 총동원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역사적 사실을 구성해내 3대에 걸친 북한의 현대사를 통사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면서, 단순히 개별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종합해 북한의 체제 변화 양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사회주의화가 완료된 이후 김일성 체제의 핵심은 ‘주체사상’과 ‘유격대국가론’으로 압축할 수 있다. 1965년 김일성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를 강조하며 ‘주체사상’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역사를 새로 쓰는 과정에서 김일성의 혁명전통만이 유일한 것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국가의 혁명을 위해 국민 전체에 항일무장투쟁기의 유격대원처럼 살 것을 요구하는,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라는 구호가 정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일성의 ‘유격대국가’는 권력이 의례를 통해 과시되었던 일종의 ‘극장국가’다. 이러한 국가 형태는 설계사이자 연출가를 필요로 하는데, 그 역할을 맡은 것이 수령의 아들 김정일이다. 1974년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이 당의 조직활동 및 선전활동을 일괄해 담당하는 것이 승인된 이후, 김정일은 유격대국가의 토대 위에 몇차례 새로운 국가 디자인을 내놓았다. 1980년대에 강조된 것은 ‘어머니 당’과 ‘어버이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국가론’이며, 1990년대에는 일심단결과 충효를 강조한 전통적 국가론이 대두되었다. 1994년 김일성의 죽음 이후, 조선인민군의 최고사령관이자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던 김정일은 군을 장악해 장기화된 경제위기와 여기에 겹친 식량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1997년 김정일이 당 총비서에 취임하면서 공식적으로 군이 당을 장악했는데, 와다 교수는 ‘유격대국가’를 대신한 이 체제, 즉 김정일 자신이 ‘선군정치’라 명명한 이 체제를 ‘정규군국가’라 불렀다. 비상체제의 성격이 강했던 이 정규군국가는 이후 당국가체제로 이행하게 된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해둔 뒤 당중앙 지도기구인 정치국을 재건했던 것이다. 집권 초기 김정은은 김정일의 정책을 계승하면서도 2012년 2월 오바마 대통령 정권하에서는 최초의 북미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젊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북미관계는 이어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1차 실패, 2012년 12월 12일 2차 발사 성공)와 제3차 핵실험(2013년 2월 12일) 강행으로 경색되고 만다. 더욱이 2013년 3월 7일 유엔안보리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만장일치로 북한제재 결의가 채택된다. 이토록 달라진 국제관계에 직면하게 된 김정은은 안으로는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을 발휘해 평양에 ‘릉라인민유원지’를 비롯해 갖가지 위락시설을 확충하고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하는 등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해나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저해하는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2013년 12월 12일 2인자이자 고모부인 장성택을 숙청하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된 지 고작 2년여가 지났다. 북핵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통일대박론’ 같은 근거 없이 낙관적인 통일론이 대목 상품으로 횡행하려 하는 지금, 북한문제와 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역사로부터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독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북한사 연구 30년 『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는 1981년부터 이어져온 와다 교수의 북한 연구 성과가 녹아 있는 책인 동시에, 그가 한반도문제와 관련해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온 50년 동안의 실천의 결과물이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형성과 평화에 헌신한 와다 교수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한일관계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은 현안들을 해결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문제가 자연스럽게 저자를 사로잡았는데, 말하자면 그에게 북한문제는 연구와 실천을 통일해주는 매개였던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