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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르소설에서 바래왔던 모든 로망, 헝거게임. . 캣니스는 대중소설 주인공이라면 대부분 포함되는 먼치킨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선동의 의미로, 아이콘으로서 선택'당해' 그 존재가 기획된 인물이다. 결국 그녀도 특별할 것 없이 소비되어간 하나의 '패'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포스트 헝거게임의 자리를 원했던 다이버전트나 메이즈러너와의 급이 다른 클래스를 벌렸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 그 과정에서 캣니스는 고뇌하고 좌절한다. 그녀는 무기력함을 벗어나 보려고도, 주인공스럽게 약자들을 구원해 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를 딱히 주인공으로서 특별취급 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생존이 아닌 한 말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다른 인물처럼 똑같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잃고, 고통스러워 하며 결국은 보잘 것 없어 지기도 한다. . 소설의 소재와 배경은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고. . 죽음의 활이 차별 없이 공평하게 뿌려지는 냉정함과 그 과정에서의 잔인함은 몰입감을 증폭시켰다. . 그리고 최후의 그 결말. 그것의 완벽함이 내겐 다섯 개의 별점이었다. 이 소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을 나는 보았다. 그녀는 소설 속 모든 중심점에서 물러난다. 아니, 낙오자라고 불리어도 될만큼 처량해지니 어쩌면 퇴출이란 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캣니스는 후회한다. 고통스러워한다. 황폐해지기도 한다. 그녀의 삶이, 시도가, 결말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 하지만 그래도 캣니스는 살아간다. 대부분의 타 장르소설 주인공의 결말과는 다르지만, 그 소설들이 서술하지 않았을 뿐 실패의 삶을 견디는 소시민의 일반인들처럼, 캣니스는 그렇게 살아간다. . 소소한 행복도 있다. 피타도, 그녀의 아이들도. 작은 희망도 모두 그녀의 행복이다. 한때 상징적 인물이었던 캣니스는 그렇게 늙어갔을 것이다. .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소재의 파격성에 묻히지 않고 인간고찰을 성공해 낸 작가의 역량과 그 작가가 만들어낸 나의 친구 캣니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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