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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새
star3.5
3시간으로도 부족했다. 히어로 영화 이전에 그냥 영화. . (이하 스포일러) . . . . <세 가지 가능한 엔딩을 모두 넣으면서 하나의 영화로 성립시킨 노력에 박수를> ★ 첫번째 엔딩 : 과업을 마친 타농부 처리하기 타농부를 처리한 후 허탈하게 걸어가는 토르의 뒷모습이 아웃 포커싱되고, 전작에서 타농부의 미소로 끝날 때 나왔던 음악이 편곡되어 나온다. (인피니티 워 ost 중 "Porch") <인피니티 워>는 타농부의 라스트 숏으로 끝났지만, '어벤져스 멤버들 버전의 <인피니티 워> 엔딩'이 다음편으로 넘어온 것처럼 보인다. "비극은 이미 벌어졌고, 테러리스트를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라는 현실적인 엔딩. 초반 한 시간 가량을 희생자들의 내면을 그리는 데 할애하며 비극 이후 남은 자들의 슬픔을 담아낸다. 타농부에게 가하는 마지막 일격이 최종적으로 토르에게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작의 토르와 타노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전편에서 처음에 공격 당한 건 토르와 아스가르드 백성이었고, 토르와 타노스는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종족이 희생되며, 마지막 일격을 토르가 가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복수는 허망하고,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여전하다. ★ 두번째 엔딩 : 모든 것을 되돌리기 첫번째 엔딩이 현실적인 엔딩이라면, 두번째 엔딩에서는 관객의 바램을 이뤄준다. 희생자들을 되살리고 테러리스트가 일 저지르기 전에 미리 처단하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엔딩. 판타지 장르의 존재 이유. 그렇게 타농부는 두 번 죽는다. 마블은 마냥 해피엔딩으로만 만들지 않아서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한다. 전작에서 타농부가 가모라를 희생한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샤가 희생하는데,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점을 분별해낸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은 영화를 많이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모라는 강제로 떨어진 반면, 나타샤는 스스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타노스도 만만찮은 게, 미래의 자신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과업을 완수한 것으로 됐다며 운명론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전편은 어벤져스 멤버에게나, 타노스에게나 전체가 비극이었다. 본편은 가모라를 되살리지 않음으로써 전편을 비극으로 남겨두었고, 나타샤의 희생 역시 비극으로 남았다. 호크아이는 일이 잘 풀렸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알리고 싶어하지만, 나타샤는 이미 어벤져스가 일을 잘 풀어내리라 믿으며 뛰어내리지 않았을까. <인피니티 워>는 혼자 있는 타노스의 클로즈업으로 끝났다. 반면 <엔드 게임>은 아이언맨의 장례식에 모인 등장인물들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롱테이크로 담는다. 이는 홀로 최후를 맞이한 본편의 5년 전 타노스와도 대조적이다. (캡틴이 "어벤져스 어셈블"을 외친 순간, 어느덧 어벤져스가 이렇게 많아졌구나) ★ 세번째 엔딩 : 멀리 멀리 돌아서 비로소 도달한 과거에서 온 타노스를 처리하는 두번째 엔딩이 관객을 위한 엔딩이라면, 세번째 엔딩은 어벤져스의 두 리더와 토르를 위한, 그리고 그들에게 빚진 모두를 위한 엔딩이다. 자신을 낳기도 전의 아버지를 만난 토니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고맙다고 말하며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희생자들을 되살리는 일 뿐이 아니었다) 자신을 희생해 사랑하는 이들을 구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캡틴은 묠니르를 들어 고결함의 자격을 인정 받은 뒤 이제는 자신의 의무를 다음 세대에 넘겨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헐크는 자아의 문제를 해결했고, 토르는 어머니와의 인상깊은 재회 후 아스가르드 왕위를 내려놓고 새 길을 떠난다. "히어로 영화 이전에 그냥 영화"라 말한 건 이런 부분들을 말한 것이다. 히어로 이전에 한명 한명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멤버들. (어벤져스 1, 2, 3, 4는 원년멤버들의 출발부터 끝까지를 다룬 하나의 영화로 느껴진다) 토니의 장례식은 국민이 모인 공적인 장소가 아니라 멤버만 모인 한적한 강가에서 치뤄진다. 히어로보다도 한명의 사람으로 보내주는 장례식. (현실적인 이유로는 아마 결말 스포 방지를 위해 외딴 곳을 로케이션한 게 아닐까) 장례식 이후 캡틴은 할아버지가 되어 팔콘에게 방패를 넘겨준다. 방패의 의미는 "막는다". 즉 어벤져스는 위험을 막는 사람들이지, 공격하는 사람들이 아님을 확실히 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비유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시리즈를 함께 하며 응원했던 관객들에게) 세계평화를 믿고 맡긴다. 그런 다음 뜬금없이 도착한 마지막 쇼트.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 페기 카터와 춤추는 캡틴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전 우주를 구했는데 결국 두 사람의 춤추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과감한 선택. 이 마지막 쇼트에 어벤져스 시리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타노스에 대항하는 리액션 쇼트일 것이다. ★ 라스트 숏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 이 단순한 진리가 바로 어벤져스가 지키려 했던 가치다. (물론 사랑을 타노스가 이야기했던 질서의 또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지만, 인간이 그런 존재인걸) 반면 타노스는 살아있는 개인의 가치와 사랑을 외면했다. 외면만 한 게 아니라 테러리즘으로 이어졌다. 타노스는 미래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움직였지만, 미래의 생명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타노스는 미래 생명의 가능성이 왜 현시점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지 증명하지 못했다. 이미 존재하는 생명들의 현재와 미래 뿐만 아니라 과거를, 쌓아올려진 기억들을 무시했다. 물론 가치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타노스의 입장에선 본인이 옳다. 아무리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의를 위해 잠시 눈감고 총대 맬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그만큼 강력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었으며, 목표를 이룬 뒤 정원에서 살다가 별다른 저항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영화는 그의 가치관 자체를 논리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타노스에 대항하여 논리나 철학보다도 관객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방식으로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영화. 어벤져스 멤버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처럼 가족이 있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단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특별한 존재라서 희생한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에도 그저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희생했다. 히어로는 강요로 결성되어선 안 된다. (스티브의 퇴장에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이언맨의 "I am Ironman." 스티브와 페기가 추는 춤. 이것들은 아주 멀리 돌아서 비로소 도달한, 어벤져스의 출발점이었던 <아이언맨>과 <퍼스트 어벤져>의 엔딩이다. 속으로는 누구보다 혼자있길 두려워했지만, 겉으로는 개인주의자처럼 보였던 토니는 1400만분의 1의 확률을 믿으며 희생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켰고,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눈 앞에서 사망했던 피터가 돌아와 자신이 죽었다 살아났는지도 모른 듯이 신기해 할 때, 토니는 마음 속 앙금이 풀리며 그를 다시 지켜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것이다) 일평생 군인으로 살며 자신만의 삶이 없었던 스티브는 사람들의 사랑을 되찾아 준 후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자신의 사랑을 찾아 과거에 남는다. (스티브의 입장에선 미래로 시간여행을 했다가 현재로 돌아간 셈이다) 스톤을 돌려놓으러 떠날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는 마음의 진실에 이끌렸을 것이다. 타노스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남은 자들이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비웃는데, 영화는 그가 틀렸다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시간을 되돌려 페기와의 기억으로 마무리된다. 선형적인 시간을 벗어나 어딘가에서 춤추고 있는, 캡틴이 아닌 인간 스티브와 페기. 스티브가 깨어나기 대략 70년 전, 토요일 저녁 8시에 스토크 클럽의 댄스 파티에 가기로 했으나 지켜지지 못했던 약속이 실현된 이 장면은 과연 노인이 된 스티브의 기억을 보여준 것인지, 과거에 있었던 순간을 직접 찍은 것인지, 스티브의 바램을 보여준 것인지 모르겠다. 플래시백은 기본적으로 기억을 담는 화법이지만, 여기선 이전 숏과의 연결이 없어서 모호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캡틴이 과거에 살게 되어 과거가 바뀌면 다른 평행세계로 진입해 어벤져스 멤버들과 만날 수 없어졌어야 했다.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스티브가 잠들어있던 동안 스티브가 삶을 살았다는 신비로운 엔딩) 이처럼 페기와 스티브의 춤은 맥락없이 삽입되었다. 이러한 느닷없음과 모호함 때문에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시적인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순간 더이상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가 되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차례로 울려퍼진 캡틴과 토니의 테마곡. 신비롭고 간결하며 아름다운 엔딩. Ps. 침착하고 진지해진 로켓을 보다가 <가오갤1> 때의 분노에 휩싸여있고 신경질적이고 위악적이었던 로켓을 떠올리니, 사람이 언제 이렇게 변했나 생각 들었다. 로켓은 일찍이 사랑하는 사람을 거듭 잃으며 맘고생이 가장 심한 캐릭터 중 한 명이었다. 인간은 겪어야만 성숙하는 존재인 걸까. <인피니티 워>의 중반부에서, 로켓은 분노에 휩싸여 한 가지 생각밖에 못 하게 된 토르를 보면서 아마 과거의 자기 자신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토르가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는 와중에도 분노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현재를 그저 최선을 다해 직시하며 살아가게 된 건 어쩌면 상실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Ps.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보았을 닥터 스트레인지의 관점 닥터 스트레인지는 1400만 개의 미래 중 타노스를 이길 단 하나의 미래를 보았다. 그런 다음 타임스톤을 타노스에게 넘겨주었다. 그 선택은 생명체 절반의 소멸이란 결과를 낳았다. 한국 관객은 번역 탓에 "가망이 없어"라 들었고,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스트레인지가 자포자기하여 타임스톤을 넘겨준 것처럼 보았다. 밑도 끝도 없이 절망적인 이 한국판 엔딩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엔드게임>까지 보고 나니 <인피니티 워> 본연의 의도가 더 충격적이다. 절반이 소멸하게 된 상황에서 "이제 최종 단계야"라고 말하는데, 모두가 부활하는 <엔드게임> 결말은 그때까지 아직 가지 않은 길이었고, 스트레인지는 그 단 하나의 실낱 같은 희망을 믿고 타임 스톤과 생명체 절반을 타노스에게 직접 넘겼다. 토니를 살려준 이유는 토니가 그 일을 해낼 인물임을 스트레인지는 알았기 때문이고, 그의 운명을 알았으므로 죽기 전 그에게 미안하다고(유감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인지가 믿은 단 하나의 미래는 5년 간 자신도 죽은 상태로 있는 미래였으므로, 본인이 개입할 수도 없는 미지의 미래에 모든 걸 걸었다. 타노스에게 타임스톤을 넘긴다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면서 스트레인지는 누구보다도 혼란스러웠을 테지만, 그런 그의 선택의 근거는 오로지 살아남은 멤버들이 끝까지 잘 해줄 것이라 믿은 일 뿐이다. 5년 뒤 깨어났을 때, 자신이 보았던 미래와 가까워졌음을 깨달은 스트레인지는,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줄 수가 없다. 알려준다면 그 결말은 오지 않을 것이므로. 다만 토니에게 떨리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고,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한 토니는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스트레인지는 미래를 봄으로써 토니의 희생을 포함해 그 모든 과정 속의 희생을 미리 겪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타임 스톤을 넘기는 순간 스트레인지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인피니티 워>의 후반부는 <엔드게임>의 결말을 위한 스트레인지의 치밀한 설계이자 간절한 도박이었다. 한국관객는 어처구니없는 오역으로 인해 어벤져스 멤버들의 열망과 노력과 희생이 모여 이른 단 하나의 결말에서 오는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없었다. Ps. 끝으로 타노스의 사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 <인피니티 워> 때부터 이미 희생에 관한 영화였다. 타노스는 설령 가족일지라도 희생시켰다. 반면 어벤져스는 타인의 희생을 선택해야하는 순간에 내적 갈등을 겪는다. (본편에서 나타샤의 희생은 본인의 선택이었다) 타노스도 내면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다. <인피니티 워>는 의무와 생명 사이에서 감정이 동요되고 갈등하며 무너져가는 인간들에 관한 영화. (예컨대 비전을 희생하지 못하고 살려두었다) 더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어벤져스는 타노스에게 패배했다. 그런 측면에서 힘을 합쳐 건틀렛 뺏으려는 씬은 압권인데, 전우주의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 퀼은 사랑하는 사람 한명 때문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바로 그런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 장면에서 퀼은 가모라가 어딨냐며 타노스에게 분노하는데, 아이러니는 가모라가 타노스의 딸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타노스도 퀼만큼, 혹은 퀼보다 더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큰뜻을 이루기 위해 슬픔을 억눌렀다. 퀼은 그러지 못했고 (타노스보다 감정적이었고) 더 나약하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즉 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타노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인피니티 워>는 어벤져스의 입장에서나 타노스의 입장에서나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비극이었다. → 본편의 타노스는 딸의 희생에 눈물 지었던 전편의 타노스가 아닐 뿐더러 이번엔 전우주의 생명을 죽이려 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타노스를 뚜렷한 악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설정에 있어 타협해버린다) 게다가 어벤져스와 달리 본인을 희생하지 않으려 했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최초 핑거 스냅 때 본인도 포함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해성 님의 코멘트를 통해 감독이 그렇다고 언급했음을 확인했습니다) 과업 완수 전까지 자연의 섭리 운운하며 본인을 지켰다. 2. 타노스는 만물의 균형을 자연의 섭리라 보고, 자신이 사명을 짊어질만큼 강력한 존재임을 알기에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다. 누굴 희생할지는 우연에 맡긴다. 그런 측면에서 타노스는 일종의 자연 재해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인구 증가로 인한 재생 불가능할 정도의 자원 고갈,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그의 주장은 엔트로피 법칙 혹은 맬서스 트랩의 일종인 듯하다. (매우 추상적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인류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MCU 영화 중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주제) 맬서스 트랩은 상당히 비판 받아왔는데, 타노스의 경우 비인륜성을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타노스는 공평하게 우연에 맡긴다고 강조하고, 따라서 타노스만 가리고 보면 자연재해가 생명체 절반을 앗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는 애초에 논리에 의한다기보다는 순수한 힘의 실현처럼 보이고, 임무를 스스로 떠맡았으나 그 자신도 자연이 아니기에 괴로워 한 사람이었다. → 아쉬운 점은 타이탄 족의 전멸 과정이 지나치게 뭉뚱그려져있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의 논리 비약은 결과적으로 타노스의 논리 비약이 되었다. 타노스의 생존 기간 동안 하나의 종족이 번영했다가 멸종한 것인데, 번영에서 멸망으로 건너뛰어버린다. 멸종하지 않기 위해 생존자들이 노력했을 수 있는데 어떻게 전부 멸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한 종족이 완전히 멸망할 정도로 자원이 0이 된다는 설정도 의아하다. 스스로 자연 재해의 역할을 맡고자 하는데, 자원 고갈로 인한 인구 절감은 어차피 자연스럽게 일어나 그것 자체가 자연 재해고, 인구가 감소하면 자원은 상대적으로 충분해지지 않나? → 타이탄 족이 겪은 비극을 일종의 우화로 보고, 일단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치자. 그러나 타노스는 타이탄족의 전멸을 전우주의 전멸에 대입하는 일반화를 범했다. 또 멸망하지 않으려면 오직 자신의 대의만을 따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어 마땅하다는 식의 이분법에 갇혀있다. 다시 말해 이미 벌어진 일 하나로 나머지 미래를 예측한 뒤 자신의 판단을 따르라고 강제한다. 아마도 종족 멸망의 슬픔이 너무 큰 나머지 더이상 한 가지 방향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됐고, 독선은 테러리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 스톤의 힘으로 우주를 재창조할 수 있다면, 자원 고갈을 막을 순 없었나? 그러나 이것 역시 타노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설정의 한계인 듯하다. → 타이탄 족의 전멸은 영화 속에서 이미 벌어진 일이므로 영화는 그 진위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건 설정된 상황이고, 문제의 핵심은 공리주의일 것이다. 한 집단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른 집단을 희생할 수 있는가? 이 논리에 관해서는 어벤져스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어벤져스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가 세상을 위해 희생할수록, 대의를 위한 당위적 희생을 외치는 타노스의 논리에 근접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타노스와 어벤져스는 서로 반대급부가 아니라 오히려 겹쳐보인다. 타노스의 학살은, 역설적으로 우주 생명의 전멸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위한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어벤져스와 목적성이 일치한다. → 전편의 타노스가 인상 깊은 악역이었다면, 그 이유는 그가 우리만큼 감정적인 존재임에도 억눌렀기 때문이다. 조쉬 브롤린은 연기로 모든 것을 압도한다. 우주를 걱정하는 그의 사명감은 순수해보이지만 그 출발점은 아주 개인적인 이유, 종족의 죽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한풀이였다. 일단 목표를 세운 타노스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에 다다르려 한다. 목표에 '타인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어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 역시 순수했고 스스로 괴로워지는 길을 택했다. → 공리주의의 결과는 이익이다. 타노스식 공리주의의 오류는 그가 생각하는 이익이 실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본인 생각에 이익이라 예측했을 뿐이다. 타노스와 어벤져스는 공통적으로 희생을 무릅썼지만, 타인을 위하는 어벤져스와 달리 타노스는 본인의 사상을 강제했다. 심지어 강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이때 가치관이 충돌한다. → 전편에서 이렇게 판을 짜놓았으면서 본편에서는 의아할 정도로 타노스의 논리를 피하고 태도를 극단적으로 수정하여 확실하고 단순한 악역으로 바꿔버렸다. <인피니티 워>에 비해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그런 부분이다. →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타노스의 생각이 옳았다면, 정말로 옳다면 그때는 그가 자신의 뜻을 강제해도 되는가? 가치관에 따라 상이한 답이 나올 텐데, 영화는 <인피니티 워>에서 엿보였던 가능성을 포기했다. 영화의 논리 비약을 빌미로 그의 논리를 틀린 것으로 치부했고, 태도까지 극단적으로 바꾸어 비인륜적인 대량학살자로 못박은 것이다. → 자연재해 자체보다도 자연재해 주변의 것들 1. 타노스의 행위와 2. 피해에 집중한다. 영화의 초점은 자연재해보다도 그것을 초래한 타노스의 행위, 그리고 남은 자들의 슬픔에만 맞춰져있을 뿐, 절반이 사라져야 했던 이유는 제쳐두고 시작한다. 타노스의 과거를 알았던 어벤져스 멤버가 그에게 따져묻는 장면이 있었다면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영화의 선택을 받아들여 원래 타노스를 그런 캐릭터라 생각해보자. 이에 대해 어벤져스의 라스트 숏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인간은 수치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페기와 스티브가 추는 춤. 오직 둘만의 무도회. 이 라스트 숏이야말로 타노스에 대항하는 리액션 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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