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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나 (영화 보러갔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준 숙제하나 생겼다) # 당신의 세 번째 살인은 무엇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작품을 두고서 열린 결말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세상에 나온 창작품은 '창작자의 창작 의도' 와 '대중이 받아 들이는 의미'가 동시에 공존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창작자의 의도는 완성되고, 작품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또 한가지의 의미가 생긴다는 점을 말한다. 둘은 따로 또 같이 존재하며 모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작품의 감독이 열린 결말이라 말함은 이 영화를 본 관객 모두의 세 번째 살인과 감독 의도의 세 번째 살인이 동시에 존재 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나의 세 번째 살인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살해 장면으로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살인사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오픈하고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관객은 살인 사건의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 미스미와 그의 변호인 시게모리가 접견을 시작하면서부터 사건의 진실은 점점 늪으로 빠져든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살인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여느 법정 영화들이 그랬듯이 사건의 진실을 종착점으로 정하고 그 종착점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길이 명확하지가 않다. 관객들은 영화가 진실의 종착점을 향하는 동안 '어? 어? 이거뭐지? 이 길이 맞는거야?'란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영화는 종착역에 이르러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확 돌려버린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핵심 의미와 결말에 대해서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답을 관객에게 전가해버린다. 그럼 세 번째 살인은 무얼 얘기하는 걸까? 첫 번째로 부조리한 사법체계의 비판이 아닐까 한다. 즉 세 번째 살인은 사법 구조에 의한 살인이라 볼 수 있다.이 점은 애매모호한 영화 속 화법들과는 달리 꽤 명확하게 그려진다. 영화가 그리는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보단 각자의 이해관계가 우선인 장소이다. 공정하고 이성적이라 생각했던 법의 구역조차 비인간적이고 경제적인 모습을 보인다.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미스미가 무죄 주장을 한 뒤 판사, 변호인, 검사측의 회의 장면일 것이다. 입장만 다를 뿐 같은 배를 모두 탔다던 동료 변호사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정리해준다. 두 번째로는 미스미의 자신에 대한 심판, 즉 자살에 가까운 살인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은 라이브톡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미스미는 사람은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스미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죽어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말한다. 미스미는 영화내내 증언을 번복 하는데 이는 정교하게 자신을 사형으로 옭아매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사형 확률이 높은 절도에 의한 살인도 사형을 받기위한 정교한 작업 중에 하나였다. 이러한 점을 들어 미스미가 저지른 두 번의 살인 이후에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마지막 세 번째 살인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살인'은 '세 번째 진실'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연유로 이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 관객의 진실을 또 다른 세 번째 살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이런저런 이유로 진범을 추측하고 이를 심판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법정 스릴러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이라 본다. 허나 개인적인 생각에 이 영화는 법정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인간에 대한 시선과 판단(심판)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진실은 항상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사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진실을 매번 마주할 수 없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진실이라 추측하는 것들을 믿고 행동하게 된다. 이때의 행동이 진실에 다가간다면 문제가 없지만 간혹 믿음은 마음을 넘어 진실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진실과 믿음 이에 의한 판단은 인간을 매순간 고뇌의 순간으로 불러들인다. 그렇다 우리는 실제 생활과도 같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매순간 판단하고 심판하고자 했다. 하지만 감독은 끝끝내 진실을 전해주지 않았고 다시금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의 진실은 무엇인지, 무엇을 믿고 있는지. 감독이 물음을 던짐으로써, 진실은 묻혔고 우리의 판단만이 남았다. 우리가 내린 답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상황에 따른 결론이 진실에 가까울거라는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믿음은 각자의 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난 세 번째 살인은 이 영화를 본 개개인 각자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마동석 '시게모리, 미스미, 사에키 셋 진실의 방으로' 시게모리 '나는 왜?' 마동석 '작성자가 멍청해서 그래, 넌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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