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로맨틱 코미디이긴 하나,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작품이다. 주인공 마두상은 안면인식 장애를 가진 상태로 영화를 시작하며, 서울에서 첫사랑인 샘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여인 (영화에선 이름 없이 그저 "그녀"로 소개된다)과 계속 부딪히게 되며 두상의 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은 굉장히 웃기고도 슬프면서 애틋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뒤샹의 '샘'을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이 맞는 듯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변기로 시작하고, 주인공들도 변기라는 매개체로 서로를 만나게 되고, 거꾸로 입는 후드티도 변기의 모습과 흡사하다. 게다가 감독은 마두상의 이름을 뒤샹에서 따왔기도 했다. 뒤샹의 '샘'은 대상 자체보단 그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와 개념을 중요시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의 "변기"는 "그녀"다. "그녀"는 두상의 안면인식 장애를 악용하여 그를 속이고 그의 앞에서 3명의 사람을 연기한다. 하지만 두상은 본인이 세 명의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녀"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변기"에게 "샘"이라는 이름과 의의를 주게 된 것이다. 이런 특이한 설정에서 두상은 서로 다른 "그녀"와 다양하지만 진솔한 대화와 관계를 나누며 첫사랑, 그리고 사랑을 찾아간다.
한편으로 "그녀"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샘이기도 하다. 두상은 불쌍한 캐릭터다. 불행한 과거가 암시되기도 하며, 영화에서도 사고만 계속 당하고, 순진하고 바보 같기도 한데 안면인식 장애까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연애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초식남이다. 이런 그에게 시련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그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그녀"이기도 하다. 이 두 주인공이 만남부터 사랑에 빠지는 정말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의 향연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최준영 배우가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로 어리숙한 마두상을 호감적으로 표현하고, 류아벨 배우가 1인3역을 하는 "그녀"를 재치있게 소화하고, 이 둘이 환상적인 케미까지 선보이며 이 매력 포인트가 굉장히 잘 살아나기도 했다.
영화는 반복적인 캐릭터들과 씬들이 많다. 두 주인공 외에 두상의 절친이자 편의점 알바인 반성중, 편의점의 단골 손님인 한 커플, 두상의 학교 동창 등 이 영화는 두상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사랑이라 여기는지 두상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두상의 여정을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전개한다.
'샘'은 독립영화로서의 발랄한 개성도 있다. 설정과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고 캐릭터들의 갑작스러운 등장도 신기하지만, 스플릿 스크린이나 예능 스타일 자막 같은 특이한 연출들을 하며 단발적인 유머를 시도하기도 하고, 점프 컷도 장 뤽 고다르처럼 과감하고 튀게 사용한다. 기본적으로는 인물들의 대화를 한 씬당 최대한 원테이크로 잡아내려는 일관된 스타일은 있으나, 이런 튀는 스타일들을 이용한 점도 인상적이긴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에 의미를 부여하기엔 너무 일회성이라 기믹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샘'은 한국 독립 영화로서 개성, 실험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까지 고르게 갖춘 수작이다. 마치 작은 연극 같은 소박한 공간들과 배경, 그리고 반복적인 인물 구성은 호감적인 주인공이 사랑을 찾으며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더욱 친밀하게 느껴주게 하며, 웃다가 울다가 연애세포도 자극하는 감정적으로 꽉찬 로맨틱 코미디로 관객의 가슴을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