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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8. 08. 여든 번째 영화 : 축복의 집 ⠀ 0. CGV 명동 씨네라이브러리를 나서 명동역 6번 출구 앞 밀리오레 무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른 한 켠에서는 좀 전에 GV 무대 위에서 봤던 박희권 감독님과 프로듀서로 보이는 분께서 함께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꺼내든 종이 - 는 빨래 대본이구였구연 - 와 펜을 챙겨 감독님 옆으로 다가가 개인 시간 보내시는 와중에 정말 죄송하다고 운을 띄운 뒤 영화를 정말 잘 봤다고 말을 건네며 싸인을 부탁드렸다. ⠀ '저 같은게 뭘.. 싸인씩이야..'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 감독님은 프로듀서(로 보이는)분과 가볍게 농을 주고받으시고는 대본에 쓱쓱 싸인을 해주셨다. 이미 박희권 감독님의 팬이 되어버린 내게 감독님은 연신 허리를 90도로 굽히시고는 영화를 봐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다. 더 팬이 될 듯. 앞으로의 작품들도 꼭 챙겨보겠다는 말을 까먹었다. 그 말을 들으셨으면 더 좋아하셨을 거 같은데. 아쉽네. ⠀ 1. GV때 질문을 했다. 난생 처음 해 본 GV 질문이었다. 촬영기법이 매우 생동감이 넘치고 다르덴 형제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고. 영화의 톤 앤 매너, 촬영기법, 배우들의 이미지가 너무 찰떡이었다고, 혹시 촬영에 있어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단박에 다르덴 형제를 많이 참고한 것이라고 호쾌한 답변을 해주시고는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과 다른 점들을 조목 조목 짚어주셨다. 등장 인물에게 대사를 많이 부여하지 않은 점, 배우들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것을 주문한 점 그리하여 관객들이 등장 인물, 특히 해수와 해준에게 이입하여 응원하지 않게끔 한 점이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과 차별화 된 점이라고 하셨다. ⠀ 2. 배우에게 대사를 주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하면서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팠던 것일까. 박희권 감독님은 의료, 경찰, 보험 등 공적 영역에서 담당되어야 할 것들마저 보장받지 못한 채 차선책일지라도 달갑지 않은 악수를 청해야 하는 해수의 상황을 보여주고 싶으셨다고 했다. ⠀ 3. 해수역을 맡은 안소요 배우님은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연기한다. 물론 GV에서도 직접 밝히셨듯이 캐릭터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연출 의도였기에 그리 연기하셨다고 했지만 외려 관객에 입장에서, 이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짠하게 만드는 매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명진이형이 빨래 연출하면서 이기조 할매 역 배우들에게 '당신이 울지 말고 관객을 울게 하라.'고 했던 말처럼. 외려 고통스러운 상황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눌러담는 해수의 모습에 모두 연민과 응원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실 산기슭에 올라 엄마의 봉분을 파는 해수의 모습에 적어도 나는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 4. 질문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감독님께서 '우리 주위에 삼촌, 작은 아버지같은 생김새이고 또 어떨 때는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남의 고혈을 짜내서 삶을 이어가는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 했다고 하셨던 형사 역의 김재록 배우님께서 마지막 언덕길을 올라가는, 숨소리로만 표현 된 엔딩 장면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어찌되었든 컴컴한 오르막길이지만, 비로소 엄마의 장례를 모두 마치고 꿋꿋하게 가쁜 숨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두 남매의 모습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쁜 숨소리가 내게는 내일을 향해 걸어오르는 가슴 벅찬 소리로 들렸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 5. 집에 오는 길에 노래가 하고 싶어 코노에 갔다. 밖에 있는 우산 거치대에 비싼 우산을 놓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인류애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우산을 놓았다. 노래를 마치고 나니 아니나 다를까 우산이 사라졌다. 내게서 떠나간 것들에 마음을 쓰지 않는 연습을 할 겸, 알바생에게 받은 코노 한 켠에 버려져있던 빠진 우산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새는 비를 쫄쫄쫄 맞으면서. 6. 집에 가는 길에 영화 생각이 나 엄마에게 전화했다. 대뜸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럴 순 없는거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아빠와 싸운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으시는데 왜인지 가슴이 찌잉했다. 삼십년 동안 엄마 아빠의 싸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선 물심양면 엄마 편이라고 말했다. 조금 웃으셨던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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