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영

Shivers
Avg 3.2
상영 시간이 한 시간 조금 넘는 <스테레오>와 <미래의 범죄>를 중편으로 분류한다면 <파편들>은 크로넨버그의 사실상 장편 데뷔작이다. 그런 만큼 <파편들>은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호러 영화를 잘 보는 편인 나도 이 영화는 상당히 버거웠다. 혐오스럽게 생긴 기생충이 인간의 배 속에서 꿈틀거리고, 인간의 얼굴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화상을 입히며, 그것도 모자라 인간의 키스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둥지를 옮기는 이미지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공포를 선사한다. 그러나 이 버거움이 영화를 중단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끔찍한 이미지에서 발산되는 불가해한 매혹,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는 이상한 카타르시스가 우리를 화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섬 아파트에 갇힌 인간과 인간의 몸속에 갇힌 기생충은 갇혀 있다는 동일한 상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연결된다. 인간과 기생충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려 애쓰는데, 이때 기생충의 탈출은 단순한 탈출에 머물지 않고 다른 인간에게로의 전이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황급히 제거해야 하는 고약한 괴물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한 어두운 본성을 상기시킨다. 기생충의 숙주가 된 인간들은 대부분 죽지 않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살아나 폭력과 성에 대한 욕구를 극한으로 표출한다. 말하자면 기생충의 침투는 평범한 인간의 심연에 세워진 억압의 장벽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인간은 기생충이라는 어두운 본성을 받아들여 도덕의식이 전무한 사나운 짐승으로 변모한다. 크로넨버그의 초기 영화들이 그렇듯 <파편들> 역시 스토리라인은 간단하다 못해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작가이자 글쓰기 교육자인 K. M. 웨일랜드의 구분에 따르면 <파편들>은 '스토리'가 아니라 '상황'의 영화다. 영화는 인물의 내적 변화와 서브플롯 없이 분명하고 직접적인 해결책이 있는 곤경을 전면화할 뿐이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이 영화는 스토리라인의 부재가 단점이 되기보다 오히려 살 떨리는 공포감을 순수하게 추출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파편들>은 상황의 끔찍함을 조금씩 변주하고 점층적으로 심화시킴으로써 숨 막히는 긴장감과 독창적인 잔혹함을 분출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그래, 이게 크로넨버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