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서점 웹을 오며 가며 몇 번 봤다.
'일본 아마존 1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런 말들은 전혀 끌리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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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자서점에서 책 대여를 하려고 뒤적거리다 이 책이 또 보이길래 클릭했다가
바로 옆에 뜬 글귀를 보고 빌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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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서로 전염시키며 '보통인간'인 척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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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나를 크게 흔들었다.
요즘의 나는 내가 옛날에 먼 발치서 바라보았던 어른이 되어 있어서 스스로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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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가 실제로 편의점 알바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의 시점으로 편의점 알바생의 일상을 상세하게 그려 실제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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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후루쿠라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는 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런 후루쿠라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며, 다른 사람들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가르쳐주지 않고
그저, 왜 너는 아직 무리에 들어오지 않았니? 하며 같은 감정을 느끼길 강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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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죽은 새를 보며,
"아빠가 새 구이를 좋아하니까 먹자!"
라고 말한 후루쿠라에게
"이렇게 작고 예쁜 새가 죽었는데 슬퍼해야지, 묻어주자, 슬프지?"
라고 하면서,
후루쿠라의 시선에서는 외려 살아있는 예쁜 꽃을 잔인하게 뜯어 새의 무덤위에 올리며 엄마는
후루쿠라에게 설득력 없는 감정을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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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것은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인데,
후루쿠라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하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데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강요당하며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후루쿠라는 타인을 따라하며 '남들처럼'하며 살게 되고, '감정'을 느끼는게 뭔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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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편의점 생활을 하며 지내던 중 혼자서는 '남들처럼' 사는 것에 한계를 느껴 동거인을 들이게 된 후루쿠라는 편의점을 그만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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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그만 두고 나니, 자신의 정체감에 대해 큰 혼란을 느끼게 되고,
편의점이 아닌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던 길에, 자신이 있을 곳은 편의점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간다.
어느새 '편의점'은 그녀의 '정체성'이 되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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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관점에서,
후루오카는 어쩌면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못하는 '싸이코패스'였는데 가족의 사랑으로, 가족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서 그나마 편의점 알바로서의 사회성 정도는 갖추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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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된 게 오늘의 '편의점 인간' 후루오카인데, 그 '가족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은 언니가 계속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눈물겹게 애걸한다.
나는 그 시점에서 후루오카가 자살할 거라고 생각했다.
새벽 3시 여름의 찬 밤 바람 속에서 후루오카는 어떤 감정을 느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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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루오카는 편의점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다, 할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을 깨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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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오카는 책의 도입부에 편의점 알바 생활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나는 후루오카가 스스로 편의점으로 돌아가기로 한 그 시점에 정말로 확실히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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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하다.
'일'은 사람으로써 역할을 하게 하여 자의식을 갖게 해 주는 것일까?
의미없는 노동이라도,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사회의 부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 되게 해 주는 걸까.
그렇다면, 후루오카처럼 '인격적 장애'가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약을 주고, 상담을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 역할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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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회적 관점에서 보자면,
어느 사회에나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은 해결되지 못하는 과제인 것 같다.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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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걸 견디지 못하면서 '무리'는 '다른 사람'에 공감하고 이해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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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피해만 안주면 어떻든 상관없어'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언제 어디선가는 사람들과 부딪혀야 할 때가 있을수 있는데 그럴 때에 꼭 같이 어울리고 잘 지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리'에 속하기를 강요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삶'도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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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 모순적이게도 나 스스로도 어느 샌가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무리'에 속한 내가 무리 밖의 사람에게 '너도 어서 무리에 들어와야지'라는 '생각해서 하는' 말 같은 걸 할 때가.
실제로 하지 않아도 '생각'이라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릴 때 먼 발치서 바라보던 그런 어른이 거의 다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아둥바둥 벗어나서 다시 더 좋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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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의 부품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부품이 되어 있는, 부품이었던 현대의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그리 길지 않고 일본 소설 특유의 간결함을 갖고 있어 읽기도 쉽다.
지루한 삶에 권태를 느끼고 있을 때 TV도, 영화도, 인터넷도 지겨울 때 가볍게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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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읽으면 두세시간이면 읽을 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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