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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star4.5
“우리는 삶의 프레임 끝에 매달려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려지지 않은 남은 부분들을 위해 잠시 비워두는 것뿐이다. 미친 듯이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 대신에, 어느 정도 여백을 위한 여유를 남겨놓는 것. 조금은 흐릿하거나 흔들릴지언정, 채우지 않은 삶의 프레임은 여백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테니 여전히 신비로운 세상을 향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기를”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어제만 해도 함께 지냈던 이웃들은 유대인과 비유대인으로 나뉘어졌고, 어제만 해도 당당했던 지난날들과 굳건했던 믿음이 흔들려온다. 사건의 진실을 넘어 스스로 소신이라며 버텼던 날들을 돌이켜 보는 자와 겪어보지 못한 진실들을 마주 하고픈 자와의 격동의 동행에서 과거를 마주했을 때 두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끝내 나는 삶에 대한 공백을 채우는 사람과 비우는 사람의 결말로 보였다. 후진으로 가는 차에 탄 두 여인은 과거로 떠난다.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 “안나”는 평생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본인인 “이다”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과거의 진실을 향하고, 그녀의 이모 “완다”는 모든 것을 겪어온 과거의 기억을 향한다. “완다”는 잊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과거들의 흔적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기억은 물론 사실조차 몰랐던 “안나”는 두 눈을 감고 차창에 기대어 잠에 든다. 차에서 술을 마시는 “완다”가 말했던 “길이 멀기에 금방 깬다”는 그 사유야말로 그녀가 삶에서 욕구를 대하는 태도다. 삶의 공백은 여전히 많이 있기에, 공백을 참지 못하고 채우려는 사람(조금 더 분방해도 된다는 주의.)이다. 반면, “안나”는 금욕적이고, 세상에 대해서 무지하다. (적어도 영화가 그녀를 담아낸 모습들은 그러하다. 공백으로 가득한 세상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늘 지키면서 살아왔고, 지켜야 한다고 배워왔다. “완다”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모두 겪어온 사람이고 “안나”는 “완다”에 비해 삶의 공백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그날들 때문에 삶이 이렇게 비워 보이는 것일까. 미래는 함부로 그려지지도 않고, 때문에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사라져가는 과거의 기억들이 이 커다란 세상에 숨 쉬는 우리를 더 비워 보이게 만든다. 그들은 프레임 모서리에, 가장 하단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이 사각의 세상은 나를 초점으로 두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우리의 비어버린 공간에 더욱 집중한다. 그런데 실은, 우리가 삶의 프레임 끝에 매달려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려지지 않은 남은 부분들을 위해 비워두는 것이다. 굳이 텅 비어버린 머릿속을 어떤 생각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어쨌든 어디로든 걸어갈 우리처럼. 지난 일들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이 세상과 나 사이에는 공백이 많다고 해도 그 비어버린 공간들의 목적이 채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담아지지도 않는 것들을 억지로 담으려고 하고, 빈자리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참지도 못한다. 하지만, 반면에 모든 것들이 채워진 사람들은 오히려 잊으려고, 빼려고 애를 쓴다. 무지와 미지의 상태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모든 것을 다 겪고 이제는 세상에 대해 더 알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공허는 다르다. 무수히 많은 공백을 가진 “안나”와 삶의 유일한 공백이었던 사라지는 그 날들마저 마주한 “완다”가 끝에 어떤 결심을 내렸나를 보라. (“완다”는 음악으로도 빈 집과 순간들을 채운다.) 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쩌면, 미친 듯이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여백을 남겨놓을 줄 알아야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따라다니고 지키며 감추기만 했던 삶에서 잠시 벗어나니 그다음이 그려지지가 않지만, 미래가 반드시 선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지혜나 경험들을 얻었다고 착각하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만한 식으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신비로운 세상과 그 세상에 대해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고 싶다. 개인이 가진 로망의 기간이 현실이 되었을 때 만료가 되는 것이라면, 로망과 함께 삶의 여백을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다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을 때 느끼는 허망보다, 다 해보고 나서 이제 남은 것도 살아있을 이유도 없는 공허함이 더 무섭다. 때문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삶이라며 쫓기듯이 사는 것보다는 무와 미를 향한 탐구와 개척을 위한 여지와 여유의 삶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채우는 것이 틀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여러 색으로 채워두는 것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아무것도 없다 해서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은 흐릿하거나 흔들릴지언정, 채우지 않아도 조용하고 한없이 투명한 삶의 프레임은 여백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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