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찾아온 이 영화는 더 주목받아야 한다. 한물 간 액션영화 감독 레오노르는 아들에게 노망난 할머니처럼 대해진다. 어느 날 미완성 시나리오를 보던 그는 TV에 머리를 맞는 사고를 겪고 자신의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쓰던 시나리오 속이기에, 그 세계 속에서 그의 존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다름 아니다. 어린 시절 촬영장에서의 총기사고로 죽은 아들은 가족 앞에 유령으로 나타나 레오노르를 이해해줄 것을 요청하고, 사고 이후 혼수상태에 빠진 레오노르를 간호하던 아들 루디는 점차 어머니의 세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순간 이 영화는 또 하나의 묘기를 선사한다. 당신의 세계가 픽션으로 존재할 때만 오롯이 존재할 수 있다면, 자신이 오로지 그 세계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다면, 타인은 그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그 픽션은 어떤 엔딩을 맞이해야 하는가? <레오노르는 죽지 않는다>는 거기에 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살아있는 픽션의 세계가 지닌 타임라인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며,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손을 내민다.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는 시네필 감독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살아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에 이 영화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