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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릴라는 변덕이 심한 카르멘이 되었다. 온갖 남자가 꼬여든다. 덕분에 심술도 심해진다. 사춘기의 레누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다소 음침하게 행동하는데, 본인이 릴라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들켜버릴까 두려웠다고 회고한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시즌2는 릴라의 결혼으로 시작해 이혼(별거?)으로 끝난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글쎄... 결론적으론 좀 피곤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릴라와 레누의 애증의 기싸움이 나를 가장 지치게 했다. 서로를 동경하면서도 질투하고, 망신을 준다. 아...이런 상황을 한 두번 겪으면 누가 더 잘못했고 아니고를 따지기도 굉장히 피곤해진다. 나 같으면 애진작에 홧병이 났을 것이다. 간접 기싸움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제쳐두고 생각하면, 이번 시즌에서는 여성성과 천성에 대한 고민이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나는 릴라가 너무 변덕스럽고 고집이 세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자는 말의 억압들로 릴라에게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박탈하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려는 릴라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릴라는 정말 끈질기게 싸워댄다. 스테파노의 아이를 임신한 릴라의 두려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레누가 거리에서 갑자기 그 마음을 깨닫는 장면이 있다. 레누는 그 때를 회상하며 여성성을 박탈당한 어머니들의 모습을 닮아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성성이라는 게 뭘까? 갸냘픈 몸매? 혹은 먹고 사는 일이 급급하지 않은 태평함? 여성성은 외모나 생활방식으로 규정되는 걸까? 레누가 박탈 당할까 두려운 것으로 단순한 젊음이 아니라 여성성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다만 내가 보기에 릴라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자기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짓밟혔을때 가장 분노했다. 솔라라의 구두 사건 처럼. 다른 한가지는 천성이다. 시즌1 부터 보아온 동네 사람들의 사건 사고를 보면, 성인이 된 그 때의 아이들이 부모와 같은 일을 얼마나 비슷하게 반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돈 아킬레의 아들, 정부가 된 멜리사의 딸, 유혹에 약하고 책임은 가벼운 사라토레의 아들. 그나마 부모와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릴라와 레누다. 그런데 피사의 대학에서 졸업을 할 즈음, 학자가 되고 싶다는 레누에게 교수는 나폴리 출신인 그녀의 사투리 등의 이유를 들먹이며 반대한다. 이탈리아어라 나는 몰랐지만, 억양이나 표현에서 나폴리 사투리가 배어있나보다. 아마 교수는 그것 외에도 남루하고 촌스러운 레누의 행색, 똑똑하지만 통찰력이 없는 레누의 사고적 한계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납득은 가지만 무례한 발언이었고, 몸도 마음도 완전히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던 레누로써는 씁쓸한 말이었다. 천성이라는 게 정말 벗어날 수 없는걸까? 원하는대로 변할 수 없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다 무슨 소용인가. 피사에도 나폴리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레누가 안쓰럽다. 시즌2는 답답하고 꼴보기 싫은 장면이 많았다. 대단히 아름답고 흥미로운 작품은 아니다. 누구에게 추천하거나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왓챠는 왜 이걸 <작은아씨들>과 비슷하다고 하지? 어찌됐건 정반대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실은 보면서 떠오른 것들이 더 있는데 이미 까먹었거나 정리가 안 된다. 흐름상 다음 시즌이 나오기는 할 것 같은데 꼭 볼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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