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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목차 1. 영화 리뷰 2. "여자라서 욕먹었다" (?) 3. 대충 예상되는 내용 (관람 전 코멘트)     1. 영화 리뷰  직접 보고 왔습니다. 영화 내용은 여러분과 제가 예상했던 것과 거의 일치하게 흘러갑니다. - 성희롱 꼰대 아재가 등장한다 - 토익반이 개설된 것은 여사원들의 불만 때문이다 - 회사 임원진은 전부 남자다 같은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내용은 읍읍...!!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영화를 봐 놓고도 댓글로 '이거 거짓말입네다 아닙네다 아닙네다 ㅠㅠ' 하던 분들은 좀 솔직해지시길).  개봉 전에는 특정 사상에 편중된 영화가 아닐까 예상해봤지만, 그런 느낌은 생각보다 덜했습니다. 그보다는 누구나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를 아주 손쉽고 편리한 방식으로 짜맞춘 영화입니다. 그저 일 년에 몇 편씩 나오고 얼마 안 가 잊혀지는, 다소 뻔하고 진부한 한국 상업 영화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걸캅스의 냄새가 스멀스멀'이라는 표현이 여러분 중 몇몇을 화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여성 영화에 심취하신 많은 분들이 <걸캅스>를 훌륭한 여성 영화로 취급하시던데, 의외네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대부분 <걸캅스>보다는 낫다는 의견이시던데, 동의합니다. <걸캅스>처럼 극도로 이분법적인 남-녀 구도를 조금이라도 탈피하려는 노력이 보였고, 뻔한 스토리의 단점을 질낮은 개그로 때우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관객에게 대놓고 메시지를 주입하려는 모습도 비교적 적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못 만든 여성 영화'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극도의 이분법적 구도와 일방적인 메시지 주입인데, 그런 부분에서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췄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영화를 망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아주 편리한 각본과 연출에 의존한다'는 것인데요, 영화 전반에 걸쳐 사건은 우연적이고 인물은 평면적이며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결말은 감성적입니다.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중요한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은 대부분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작동합니다. 특정 순간에 필요한 인물은 우연히 등장하고 필요없는 인물은 우연히 퇴장합니다. 등장한 인물들은 이야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마치 합의라도 한 듯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데, 물론 우연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 단서들 역시 우연한 계기로 발견되는 등 영화는 수많은 우연들에 의존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그녀들이 주체적인 선택과 행동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녀들의 운이 좋아서였는지 헷갈릴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여성 중심의 연대를 통해 시대적 부조리를 해결해나가는 모습' 아니었나요? 결국 이러한 우연의 남발은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영화가 스스로의 주제의식마저 깎아먹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게 한 셈이죠.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너무나도 편리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르의 특성상 소시민이었던 인물이 각성하는 모습이나, 악인 또는 방관자였던 인물이 조력자로 전향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동기는 무척이나 가볍고 단순합니다. 선/악역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인물들이 다른 인물의 말 몇 마디로 마음을 바꿉니다. 만약 이런 연출이 입체적 인물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라면 그건 철저히 실패한 것입니다. 평면적인 인물을 얄팍한 동기로 뒤집어봤자, 그건 '뒤집힌 평면'일 뿐이니까요.  영화 속 인물들처럼 관객들 역시 말 몇 마디에 마음이 감화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영화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간까지 똑같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영화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메시지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눈물섞인 외침'이나 '잔잔한 분위기에서의 독백', '당당하고 시원한 한 마디의 일갈'의 형식으로 관객에게 전달됩니다(이러한 주인공들의 외침과 독백에 하늘마저 감동하셨는지, 날씨도 각 장면에 맞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아주 편리하게 변화하더군요). 물론 이러한 방식은 이전의 한국 영화들(특히 관객에게 '무언가'를 강렬히 전달하고 싶어했던 영화들)과 비교하면 적다고 느껴졌지만,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로서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는 결말마저 아주 편리하게 제시합니다. 페놀 방류 사건은 어디로 가고, 에라 모르겠다 '뇌절 수준의 반전 남발하기'와 '간악한 외세(하필이면 미국과 일본)에 맞서 싸우는 민초들을 통한 카타르시스'로 매듭지으면 장땡이거든요. 특히 사장실 장면에서 특유의 오글거리는 표정으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주주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모습, 그리고 문제를 해결한 후 모든 인물들이 일렬로 서서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훈훈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마치 90년대의 어린이 교육용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사건 해결 이후 주인공들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초반에 나온 장면들에 따르면, 삼진그룹은 값싼 노동력의 고졸 여성들에게 잡다한 심부름이나 시키면서 승진은커녕 임신하면 곧바로 내팽개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회사에서 8년간 차별받으며 지내온 주인공들과 토익반 여사원들은 결말부에 이르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회사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끝끝내 회사를 지켜내고야 맙니다. 결국 그녀들을 차별하던 회사라는 시스템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녀들은 그 안에서 승진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그려냅니다. 그녀들을 차별해온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는 단 한 발짝도 접근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비겁하죠. 문제의 근본을 건드리긴 복잡해보이니 그저 시스템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는 식의 해피엔딩으로 퉁쳐버리니까요. 이런 비겁한 영화를 보고도 단지 '여자들이 다 해먹으니까 5점!!' 이라며 기계적으로 별점을 퍼주는 모습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 "여자라서 욕먹었다" (?) "지금까지 남성 중심 영화들은 재밌다고 잘 봤으면서 왜 여성 영화에만 유독 엄격한 건가욧?! 여자라서 욕먹었다!! 뻔한 클리셰지만 여자들이 다 해먹으니까 5점!!"  소위 '여성 영화'가 나올 때마다 왓챠에서는 위와 같은 코멘트를 남기며 개봉하기도 전부터 별점 5점을 퍼주는 사람들이 출몰하곤 합니다. '지금껏 그런 영화가 많았는데 무슨 문제냐'며 자신들이 추종하는 특정 영화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부류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몇 년 전 가수 아이유가 JTBC 뉴스룸에서 가졌던 인터뷰가 떠오릅니다. 그 해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아이유에게 아나운서 손석희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골든디스크에서 솔로 여성 가수가 대상을 받기가 왜 그렇게 힘들까요?" 여기에 아이유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솔로 여성 아티스트가 대상을 받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가수가 대상을 받는 자체가 힘듭니다." 그야말로 우문에 현답이었습니다. "여성 영화라서 욕먹었다!!"라며 성토하는 몇몇 분들 역시 위 인터뷰에서의 손석희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지 여성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여성 영화는 없습니다. '못 만든 여성 영화'가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못 만든 여성 영화'가 비판받는 이유는 '못 만든' 영화이기 때문인데, '여성' 영화라서 비판받는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죠. '잘 만든 여성 영화'가 대중에게 좋은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델마와 루이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써니> 등의 여성 영화들이 저를 포함한 많은 대중에게 호평을 받고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만든 영화니까요. 반대로 <걸캅스>, <오션스8>, <고스트버스터즈>(2016) 등이 혹평에 시달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못 만들었으니까요. <리얼>, <물괴>, <자전차왕 엄복동>등 다른 못 만든 영화들이 비판받은 이유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대중 영화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여성 중심 영화든 남성 중심 영화든 잘 만들면 대중의 호평을 받고, 못 만들면 비판을 받습니다. 여자라서 욕먹는 게 아닙니다.  제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작성한 예상 코멘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전에도 <백두산>과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한국 영화의 뻔한 스토리라인을 예상하며 조롱 섞인 뉘앙스로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남성 중심 영화인 이 영화들의 줄거리를 예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저 뻔하고 예상되는 한국형 영화였기 때문이지, 주인공의 성별은 상관이 없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마찬가지로 뻔하기 때문에 예상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자라서 욕먹었다'는 생각은 접어두시기 바랍니다.     3. 대충 예상되는 내용 (관람 전 코멘트) 발단 : 삼진그룹의 말단 여사원인 세 주인공(좌충우돌 고아성, 걸크러쉬 이솜, 엉뚱발랄 박혜수)은 입사한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을 하지 못함. 여자라서 커피타기, 청소 등 잡무만 맡으며 여자라서 성희롱당하기 일쑤임(김의성같은 꼰대 아재가 "미스김은 우리 부서의 꽃이라니까~ 껄껄껄" 이런 대사 한번쯤 날림). 전개 : 여자도 승진시켜달라는 여사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회사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토익점수를 기준으로 내세움. 주인공들은 좌절하지만 이내 오기가 생겨 토익반에 등록함. 그러던 중 주인공들은 우연히 회사의 비리 정황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윗선으로 보고함. 위기 : 주인공들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상사들과 회사 임원들(죄다 남자임 아무튼 남자임)은 이를 은폐하려고 하며 주인공들에게 침묵을 강요함. 회사 측은 다양한 방법으로 회유와 압박을 시도하지만 주인공들은 이에 굴하지 않음. 절정 : 주인공들은 토익반 수강 여사원들을 중심으로 회사의 비리를 고발할 비밀스러운 작전을 펼침.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여줬던 클리셰들(위장, 잠입, 기밀 유출, 방해 세력, 음모, 추격전, 폭로 등)을 성별만 바꿔서 때려부으며 ✌여풍당당✌을 보여줌. 주인공들과 회사의 갈등이 절정에 달한 장면에서, 회사 내의 여성 차별에 대해 성토하며 남성 중심 기업문화에 일침을 날리는 주인공의 멋진 독백씬이 한번쯤 등장할 수 있음. 결말 : 결국 주인공들은 비리문제도 해결하고 토익도 잘 보고 승진도 했다는 행복한 이야기 ^^ (성희롱 꼰대아재는 비리문제에 연루돼서 짤림) +) 예상 반응 - "뻔한 한국영화 클리셰 떡칠이다" vs "지금까지 한국에 이런 영화 오조오억개였는데 여자라서 욕먹었다!!"로 극명히 갈림(이런 영화 오조오억개인 판에 또 나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은 못 하는듯) - 이상하게도, 2020년에 갓 취업했을까 말까 한 나이대의 일부 관객들이 1995년 배경 영화의 여성들에게 자신들을 이입하며 공감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됨(취업 못했어도 공감능력은 아무튼 발휘함) - 이동진은 2.5점~3.5점 주면서 양쪽 눈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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