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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베를린 장벽을 건넌 동독인들이 서독의 가장 큰 영화관에 쳐들어갔다. 그들에게 통일은 미제 포르노를 당당하게 감상한다는 의미였으나 이 영화는 그 환상을 보기좋게 박살냈다. 섹스 - 영화 중앙동아리 술자리에 이 영화 이야기가 가끔 나왔다. 관건은 제목의 섹스를 얼마나 드라이하게 발음하느냐인데 난 안본 티를 감추려 줄창 베를린 장벽얘기만 하곤 했다. 그날은 술값을 낸 사람이 가장 많이 떠드는 자본의 날이었고 한번도 취한 모습을 보인적 없던 선배가 내 등에 업힌 날이기도 했다. 누나는 업힌채로 택시를 잡으려면 반대편으로 건너야 한다고 내 머리카락을 땡겨댔다. 나는 걸을 수 있냐고 묻고는 술깨는 약을 파는 심야약국, 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공간을 찾다 훼미리마트로 들어갔다. 거짓말 - 너 그 영화 안봤지? 순간 답을 알았지만 누나의 드라이한 발음을 듣고 싶었다. 섹거비 임마, 택시는 계속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앞장서 걸었고 파리바게트 골목에서 50미터를 더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술취한 사람의 주문은 진짜 개같은 것이어서 나는 입으로 붕붕 소리를 내면서 돌려차기를 해야 했다. 누나가 노래를 시키고 장독대를 비키고 나온 런닝 바람의 아저씨가 고함을 지르기 전까지, 난 순진한 척 매우 교활하게 계산된 연기를 보여 주었다. 거기가 누나가 좋아하던 사람이 자취하던 집 바로 앞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비디오테이프 - 주에 몇번은 동아리방에 갔는데 사람이 없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간발의 차이로 낙석이 날리는데도 운이 좋은 줄 몰랐다. 거짓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누나도 당시에는 그 이야기의 실체에 접근할수 없었다고... 루머란게 당사자들을 철저하게 격리시킨단걸 그때는 몰랐다. 비디오 깍데기에 적힌게 너무 뻔해서 아무도 그 테이프를 틀어보지 않는 그런 스토리 유년기에 나는 이 비디오 깍데기의 촘촘한 활자들을 읽고 야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단걸 알아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데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나보다. 그 날 누나는 진작부터 고개를 수그리고 울고 있었다. 나는 개처럼 갸우뚱하게 그 밤을 기억한다. 기억도 이 영화의 화질도 너무 조악하지만 보는 내내 그 밤, 주인과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주지 못한 게 못내 미안한 개의 심정이 되었다. 이제 기억이 견딘 곳에 이 영화의 제목과 찬물같은 개의 짖음만 남았다. 그 공간도 지금처럼 따라 짖는 개 하나 없는 텅빈 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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