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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일

노성일

7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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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 뿡뿡

Books ・ 2008

Avg 4.2

비교적 현실적인 세카이계적 분위기.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일종의 부조리극, 혹은 실존주의적 작품이다. 한 인간이 본질에 충실해지는 방법 그 전에 본질은 무엇인가. 이걸 하나로 묶어주던게 본작에서 섹스인거 같다. 특히 푼야마, 오노데라(푼푼혈육) 쪽 인물들이 하나의 객체로서 섹스와 섹스와 관련된 해프닝에 엮인다. 섹스를 통해 본질에 충실한, 욕구에 충실한,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솔직한 존재가 되려하지만 다양한 해프닝들이 이를 역설한다. 인간의 성욕과 그 해소(성교)는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되는 과정이지만 필연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요구한다. 심지어 딸딸이를 칠때 조차 가상의 타인을 매개로 필요로 한다(본작에서도 몇번 나온다.) 잘 자, 푼푼에서는 주인공 푼푼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이 이 부조리한 관계속에서 모랄적으로 허덕인다. 푼푼의 인생이 몇 사건으로 바로 씹창나고(푼푼 내적으로 씹창나긴한다) 완전이 여기서 만화는 컷이다 싶게 진행되고 끝났다면 이 만화의 가치는 염세적이거나 절망적인게 다 일거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푼푼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그들 스스로 주위 상황과 환경을 자신의 본질에 의해 씹창내버리지만,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 점이 부조리극으로서, 실존주의 작품으로서 가치가 크다고 본다. 사람은 어떻게 되든 살아만 있다면 본질에 충실할 수 있고, 또한 본질에 충실하다면 1초라도 더 계속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