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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잠재적 가치를 칭송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은 종잡을 수없이 유망(流亡)한 사람이라니. 지옥 같은 삶을 스스로가 초래한 것을 간과한 채 울부짖고, 방법을 찾겠다더니 본능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서는 자의 어리석음. 원석으로부터의 삶을 보석으로 바꿀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타인이나 낯선 것이 아닌 오직 나에게로부터 가공되는 삶.” 귀를 조여오면서도 내면의 심해를 탐구하는 듯한 소리가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데,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고 난해했지만 어느새 신비로워진 그런 느낌. 마치 낯선 것을 향한 우리의 첫인상처럼. 그런데, 그 일면식도 없었던 것과의 첫 교감에서부터 오만 가지 빛이 보이고, 우주가 보이며 마치 나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확신에 가까운 묘한 느낌. 그런 느낌을 원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걸 느끼길래, 미지를 향해서 그리도 확신에 차있는 것일까. 낯선 것들을 향한 긍정적인 확신을 바라볼 때에 주위에 둘러싸인 비관적인 시선들은 대게 이렇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허우적대는 인생인데, 타인의 일생과 매겨지지 않은 원석을 향해 모든 것을 걸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비유하려 할 때, 아직은 그려지지 않은 백지의 상태보다는 쉽사리 떠올려지지도, 그려지지도 않을 말 그대로 혼돈의 암흑이 더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암흑을 채우는 것은 아무리 투정해봤자 후회나 연민 따위를 미래는 신경도 안 쓸 테고, 그렇게 지나가버릴 거고, 어느새 끝나버릴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허무함을 막연한 본능에 따라 채우려는 자의 암흑을 보여주는 영화랄까. 본능의 원천이 생존보다도 욕망에 더 자극을 받는 것 같은 하워드는 본인의 미래가 아닌 타인이 가진 원석에 배팅을 한다. the weeknd가 대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말도 안 되는 배팅이라는 말에 비웃는 그는 아무리 그 도박이 나의 결정이 시작이라고 해도, 허무함뿐인 암흑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긴다. 우스운 건, 정말로 그가 자신했던 유망들을 향한 안목은 맞은 듯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신중하지 못한 매 순간의 선택들(아마 마치 몸에 배어 있는 습관처럼 본능에 이끌린 결정)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또 자기가 자초한 일임에도 그걸 깨달을 눈치마저 없는 듯 모든 탓을 세상을 향해 돌린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잠재적 가치를 칭송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은 종잡을 수없이 유망(流亡) 한 사람이라니. 지옥 같은 삶을 스스로가 초래한 것을 간과한 채 울부짖으며 방법을 찾겠다면서 본능적으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자. 되는 것 하나 없는 지옥 같은 삶에서 피눈물 흘리면서도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고야 마는 꺼림칙한 한방을 다시 노리는 그를 보면서 느꼈다. 그는 이번 생에는 그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날 수가 없을 거라고. 마치 몸에 배어있는 습관들. 본인의 신세를 탓하면서도 어느새 그 바닥의 향수가 몸에 베어있는, 그리고 그 향수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 어리석음. 그려지지 않던 암흑에서 벗어나기 위했지만, 애초부터 그의 결정들은 모두 타인의 것과 낯선 것들에 걸었기에, 단 한 번도 본인을 향해 걸었던 적이 없었던 그의 미래는 비록 큰 성공일지라도 결코 그려지지도 채워지지도 않을 허무함뿐이다. 아무래도 암흑과도 같은 미래에 받아들일 그 빛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찾아야만 하나보다. 그 낯선 것에 홀려버리는 본능적인 느낌들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원석으로부터 일궈낸 삶을 보석으로 바꿀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본인이 걸어왔던 일을 돌이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모를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지를 향한 도전과도 같기에, 미답에 대해 걸어가는 것은 좋으나 그 해답은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기대나 본능에 이끌리는 결정보다는, 한 번도 바라본 적 없었던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원석을 들여다보는건 어떨까. 스스로에 대한 탐구와 확신으로 채워나가게 될 그날이 설사 실패한다 한들, 적어도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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