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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가장 고통스러운 일과의 직전에 프리즈 프레임으로 시간이 멈춘 척 하거나 컷으로 그 순간을 건너뛰어 줌으로써 카메라가 그 순간들을 같이 망각해 줄 때, 카메라는 일견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미망인 혹은 섹스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으로 규정된 잔느의 일상을 견디게 해 줄 버팀목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카메라조차, 잔느의 집 안에서 아무리 자리와 구도를 바꾸며 발버둥쳐 보았자 결국 또 다른 벽에 가로막힌 잔느를 바라볼 수밖에 없고, 어쩌다 그 집이란 공간에서 잔느가 벗어나는 순간을 포착하더라도 끝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철창 같은 엘리베이터로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그 존재를 확인해야만 한다. . (스포일러) . 일상이 덜 감옥 같았던 과거를 꿈꾸게 하던 단추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리고, 그 일상 너머 미지의 공간을 꿈꾸게 하던 (그리고 그나마 유일하게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주는) 페르난드의 선물이 다시 일상 안에 그녀를 가두는 잠옷이었음이 밝혀지고 나면,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자신과 카메라가 늘 외면하고팠던 그 특정한 일과가 기어이 시각화되고 만 그 한복판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잔느의 얼굴과 집의 벽 위로 무한히 재생되고 다시 무한히 되감아지는 필름 릴의 환영이 덧씌워진다. 그 환영 아래서 그녀는 꿈으로 탈주하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아보지만 그 눈은 이내 다시 뜨여 좌절할 수밖에. 필름도 꿈도 단지 조금 다른 양태로 무한히 반복되는 굴레 안에 갇혀 있을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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