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Sirat
Avg 3.7
영화가 갑자기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처럼 난데없이 추락한다. 지옥으로 지옥으로. 극장의 공기가 뻑뻑해진다. 지평선이 지워진 어둠 속에서 차의 헤드라이트가 이야기의 행로를 비춘다. 차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숨이 막힌다. 이 여정의 목표는 이제 무의미해졌을까. 아니라면 어느 때보다도 유의미해졌을까. 딸을 찾던 남자가 더욱 절박해졌을지 모든 의욕을 잃었을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제야 영화가 추락을 시작하기 전 얼마나 평온했는지 곱씹는다. 옷차림부터가 수백의 군중과는 동떨어진 아빠를 쪽팔려 할 법도 한데 전혀 개의치 않은 아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움직여 동료가 된 청년들, 여정의 목표보단 부산물로 생겨난 관계가 소중해지면서 생겨난 어떤 상승. 다들 어딘가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각자가 그리던 음악과 춤에. 우리가 바란 구원을 하찮게 만든 당신의 불행으로 인해 우린 이제 하나야. 이제 당신을 버릴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그들의 몸은 하나로 뒤엉켜 잠을 잔다. 서로의 베개와 이불이 된 그들을 아침햇살이 비춘다. 지옥 속에 피어난 천국 한 웅덩이. 마음이 아려온다. 삶에 대한 기대를 재건할 수 있을 것만도 같다. 그리고 영화는 두 번째 변곡점을 맞이한다. 이야기가 완전히 독특한 각도로 휜다. 앞선 불행이 사소한 오프닝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세 번째 네 번째 변곡점이 밀려든다. 이제는 저들이 딛고 선 땅의 본질이 곧 서사 그 자체다. 피해 가면 되는 줄 알았던 전쟁은 이들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복판으로 끌어왔다. 음악과 춤이 있어야 할 곳에 죽음이 있는 일에 전쟁 말고 달리 붙일 이름은 없다. 우리가 정 붙인 이들을 저곳에서 구출해주는 건 누구보다도 먼저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다. 감히 당신들이 어떤 마음일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이 주어진 사람들. 비슷한 정도의 폐허를 품고 있어서 삶을 함께 허탈해할 수 있는 이들. 마침내 다 함께 맞는 모래바람엔 이제 별것 아닌 염원이 실린다.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일 것만도 같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진부한 말을 온전히 이해한 채로 삶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삶을 잘 모른 채로 사랑할 때보다 덜 재미있다. 뱃속이 설렘으로 울렁이는 일은 덜 일어나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일에도 제동이 걸린다. 끝없이 올라갈 것 같은 기대나 세상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틋함도 더는 없다. 그런데도 더 낫다. 더 나은 삶이 아닌데도 더 나은 무언가가 분명 생긴 것 같은 순간. 이전엔 생각지도 않던 존재들과 같은 바퀴 위에서 덜컹이는 게 더 낫다. 뒤늦게 눈치챈 이 세상의 진실을 일찍이 뼛속에 새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피곤해하는 게 더 낫다. 삶이 더 험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할 때, 더 나은 사랑이 그곳에 있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본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미쳐버린 새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35층 내 방 창가에 앉아 새들의 변덕을 하염없이 구경하곤 했다. 날던 중에 허공에서 죽은 것처럼 지상을 향해 맹렬히 떨어지던 몸, 그러다가 그 농담이 시시해졌다는 듯 다시 멀쩡히 날아오르던 의지. 광저우의 공기가 오염되어서 새들이 제정신이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탁한 하늘에 꼭 하나씩 있던 또 다른 주인공은 검은 비닐 봉지였는데. 참 높이도 올라왔네, 싶은 것들이 이따금 홀로 유유자적했다. 미쳐버린 새들도 검정색이었기 때문에 가끔은 새들이 동료로 착각할지 궁금했다. 텅 빈 봉지들은 오히려 제정신이라 일관성이 있었다. 새들의 지나치게 실험적인 안무에 비해 친절하고 예측 가능하게 춤췄다. 오로지 외부의 흐름으로 온몸이 채워진 것들. 봉다리들과 새들의 대비를 하도 봐서 나는 뻔한 것보다 난해한 게 더 낫다고 믿는 사람으로 컸다. 이 영화를 완전히 지지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불쾌하게 여길 사람도, 영화가 주인공들을 과도하게 처벌했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도덕적 우월감을 감지한 이들도 있으리라. 세상 모든 종류의 우월감 중에 제일 나은 게 도덕적 우월감이라고 생각한다. 더 윤리적인 선택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는 쪽을, 그것이 분명히 더 낫다고 치켜세우는 쪽을 지지한다.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전쟁은 지금 내가 사는 행성에서 충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의 방위 산업은 어느 때보다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다보고 있다. 지난 가을 부국제의 중간 지점이었던 어느 아침 아홉 시에 이 영화를 봤다. 매진된 극장에서 우리가 함께 경악하고 울창한 정적을 만들어간 그 순간, 그곳의 누구도 전쟁을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드디어 영화가 개봉한 올겨울,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추천을 수없이 들었다. 내겐 사운드가 텅 빈 순간이 더 중요한 영화라서 사운드를 잘 뽑아낼 극장보단, 최대한 예매율이 높은 곳, 함께 세계를 염려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보길 추천한다. 웬만하면 양옆에 사람이 없는 자리를 선호하는데 이 영화만큼은 다시 볼 때도 내 양쪽에 사람이 앉아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