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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애정을 가져본 기억이 도통 없는데, 오뉴블은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는 게 너무 슬프더라. 그래서 괜히 미루고 억지로 안 봤다. 시즌 5의 13화, 아껴둔 마지막 에피소드를 드디어 봤다. - 오뉴블 속 '여자'들은 수동적이지 않다. 나약한 존재도 아니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게다가 이 여자들은 공격적이며 통제하기 어려운 여자들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해, 책과 노래 가사도 순종적인 여자를 바라며, 여자의 조신함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이 뿐인가, 놀랍게도 2017년에 여자는 죽여도 되는 부속품으로만 치부하는 영화도 나왔다. 미디어에서는 여성의 소비를 통하여 남성의 우월성을 드러내고는 한다. 오뉴블에선 이딴 거 1도 없다. 지금껏 남자들이 누리던 모든 배역을, 남자들의 그늘에서 조연만 맡던 '여자'들이 해낸다. 오히려 우리의 리치필드 재소자들은 찌질한 남성들 사이에서 빛난다. - 여자에게 아름다움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꾸며야 한다. 사회에서 여자에게 치장은 요구가 아닌, '강압'이다. 그런데 리치필드 재소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아름답지' 않다. 여자 배우에게 아름다운 것은 당연한 의례 같지 않은가. 누구나 감탄하는 미모가 있어야 주인공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주인공은 파이퍼라고 말할 수 있다. 나중에 언급 할 거지만, 사실상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배역이 주인공이다. - 또 오뉴블에서 나를 가장 흥분 시키는 큰 이유는, 이 수많은 여자들을 그저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본다. 오뉴블이 청불인 이유가 있다. 나체가 정말 자주 나온다. 그런데도 여자의 곡선을 강조하고, 신체를 클로즈업하지않는다. 그냥 사람의 몸으로 본다. 여자를 절대로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는다. 얼마나 놀라운가! 나는 샤워 장면을 떠올리면, 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열기 사이로, 카메라가 물이 타고 흐르는 고운 살갗을 비춘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이 발부터 시작하여 상체로 올라오고, 가슴을 중점으로 허리의 곡선을 강조하지 않는가! 오뉴블은 이딴 거 1도 없다. 그냥 쳐진 살을 보여주고, 허벅지의 셀룰라이트를 비추고, 튀어나온 옆구리 살을 비춘다.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와, 이런 배우들도 옆구리 살이 있구나!'라고. 가녀린 여자들의 몸도, 사회에서 말하는 날씬한 몸을 가진 여자도 그냥 사람 몸으로 본다. 또, 우리 재소자들은 신나면 상의를 벗어버리고, 브라도 벗고 뛰어다닌다. 여느 남자가 그러는 것처럼 가슴을 내놓고 뛴다. 근데 이것을 잡는 카메라도 당연히 신나서 뛰는 사람으로 본다. 보는 나까지 유쾌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는 거대한 체구의 빅부가 민소매를 입고 나오는 것에 크게 놀랐다. 당연히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항상 체격이 큰 여자의 몸은 그저 희롱의 대상이었다. 또 살은 숨겨야만 하는 불편함이었으며, 상대 배우의 존재를 더욱 드러내주며 자신은 웃겨야만 하는 배역으로 나온다. 그저 '뚱뚱한 여자'니까. 내가 좁은 시야에 머물러서 그럴지 몰라도,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빅부 정도의, 그니까 주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량를 지닌 배역을 '뚱뚱한 중년의 여자'가 맡았던 기억이 없다. - 또! 남자들에게 추파 던지는 장면도 압권인데, 직접 봐야 한다. 다들 윙크 날리고, 노골적으로 몸을 훑는다. 섹스할 땐 어떨 것 같다고 대놓고 말한다. 어떤 남자들은 보면서 인상을 찡그릴 텐데, 당신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여자들에게 이런 것들은 삶의 일부다. 시선 강간은 평생 받아야 하는 고통이다. 대놓고 훑고, 힐끔힐끔 쳐다보고, 속닥 거리는 말을 애써 무시해야 한다. 몸매도 안 예쁜데 뭔 걱정이냐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안 볼지 몰라도, 팩트는 대다수는 몸매 안 예뻐도 본다. - 아! 또 있다. 한 번에 쓰려니 가물가물. 여성의 성욕을 여과 없이 말한다. 주디 킹은 리치필드에서 노인으로 불린다. 그런데 섹스에 대한 열정은 변함없다. 모든 재소자들이 섹스에 굶주렸다. 암묵적으로 여성의 성욕은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이다. 우리 보지대장부들 그딴 거 1도 없다. 넘치는 성욕을 말할 때 엄청난 매력을 풍긴다. 자위하는 남성들은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고, 영화에서도 개그 소재로 자주 쓰인다. 그에 비해 여자들의 자위는 굉장히 비밀스럽다. 여자들 끼리도 자위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다. 오뉴블은 그딴 거 1도 없다. 넣을 수 있으면 다 넣고 즐긴다. ㅋㅋㅋㅋㅋ - 아, 또.. 시즌 5에서는 높은 굽의 힐을 '가부장제에 상징'이라고 파이퍼가 말했던 것 같다. 이렇듯 시즌을 거쳐갈수록 가부장제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가부장제에 대한 말은 짧지만 여러 번 언급됐던 것 같다. 누군가가 여자의 성은 사회에서는 돈이라고 말했던 거 같기도 하고. - 그리고 여기서 파이퍼는 기계를 수리하고, 빅부는 자동차를 고친다. 도깃과 마리쨔는 운전을 한다. '여자는 주방일'이딴 거 1도 없다. 다들 자신들 살려고, 감옥 안에 있는 물품들을 완벽한 물건으로 재생산한다. 개인적으로, 생리대를 마스크로 쓰는 거 너무 좋았다. 여전히 나는 생리대를 눈치 보며 주머니에 빠르게 넣는다. 근데 그 생리대로 마스크를 만들어서 쓰고 안대로 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자신이 필요한 일에 생리혈도 사용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 그리고, 스포라 이름을 못 밝히지만, 리치필드의 앞 날이 달린 협상을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 이끈다. 또, 노인이 정말 큰일을 해낸다. 나는 리치필드의 운명을 이끄는 존재는 흑인이라는 것과, 궁극적 히어로는 할머니라는 게 굉장히 흥미롭다. - 또! 마지막! 오뉴블의 캐릭터들은 모두 굉장히 입체적이고, 어느 누구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좋다. 정말 마법 같은 게, 모든 캐릭터들을 애틋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자기 취향 맞는 캐릭터에게 한없이 빠지게 만든다. 나는 그 경우가 니키와 프레이다 할머니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본도 탄탄하다. 모든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엔딩은 영화만큼 긴 여운을 준다. - 아. 또, 문라이트도 그랬고, 오뉴블도 마찬가지로, 편협하고 무지한 내가 부끄럽다. 나는 동성애를 생각하면 항상 백인을 떠올렸을까. - 그리고, 타란티노식 복수도 있다. 모든 악역에게는 가혹한 벌이 있다. 정말 이거 짱이다. - 아 사실 마지막 에피소드만 남겨두고 다 본지는 꽤 됐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는 게 너무 속상해서 이제야 봤다. 다 기억할 것만 같던 많은 장면들이 사라졌구나. 속상하다. 어쨌든 오뉴블 만세!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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