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J

Bad Times at the El Royale
Avg 3.2
'캐빈 인 더 우즈'로 감독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한 드류 고다드의 두번째 연출작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의 경계에 있는 엘 로얄 호텔에 모인 의문의 투숙객들을 둘러싼 범죄 스릴러다. 이 영화를 보며 바로 떠오른 영화는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였다. 밀폐된 공간에 각자 나름대로의 동기를 가지고 모인 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세하기도, 적대하기도 하는 스릴 넘치고 예측하기 힘든 전개가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서부극에 대한 사랑이 담긴 단순한 매력의 이야기를 전개한 반면, 드류 고다드는 냉전 시대라는 배경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FBI, 첩자들, 베트남 참전 용사, 찰스 맨슨류의 사이비 교주를 둘러싼 범죄단 등 훨씬 다채롭고 복합적인 캐릭터들을 가지고 2시간을 훌쩍 넘는 난장판을 벌인다. 이 영화에 대해선 딱 하나의 약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명확한 구심점 없이 알 수 없는 폭력만 주고 받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헤이트풀8'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일종의 호불호 포인트지, 큰 약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명확한 구심점을 제시하지 않고 포커스를 이리저리 옮기다가 서서히, 아주 자연스럽게 중심을 찾아가는 매력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 수많은 장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선 엘 로얄의 디자인 자체가 정말 아름답다.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매력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들며 영화가 펼쳐지는 이 작은 세계에 완전히 푹 빠지게 된다. 외관적으로도 레트로적인 매력이 넘쳐 흐르며 다양한 목적의 공간들이 한데 모여있기도 하기 때문에, 다양한 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쉽게 해주는 연출적인 편리함도 허용하는 영리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엘 로얄에서는 친근한 대화씬이 살벌한 범죄씬으로 돌변하기 딱 좋게 설정돼있다. 그리고 이 레트로 분위기를 더욱 풍성케 해주는 쥬크박스 음악과 신디아 에리보의 소울 넘치는 솔로 곡들까지 일품이었다. 거기에 캐릭터들의 성격을 단번에 알려주는 의상들과 그 캐릭터들을 정말 제대로 살리는 명품 배우들의 열연도 최고였다.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는 바로 "경계"다. 우선 엘 로얄 자체가 두 주의 경계에 있고 이를 일종의 셀링 포인트로 쓴다. 이 시대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첨예한 대립으로 나뉜 세상, 진리로 무장한 "우리"와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으로 자신들을 분리한 맨슨 가족 같은 범죄자들의 시대였으며, 엘 로얄에 모인 사람들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경계를 어떤 식으로던 경험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엘 로얄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계의 의미가 희석되는 곳이기도 하다. 네바다와 캘리포니아가 이 한 호텔에서 공존하듯이, 이 공간에서는 모든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이곳에서는 범죄자와 선량한 시민의 경계도 모호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도 의미없으며, 선과 악을 단정짓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경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엘 로얄에서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 되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본인의 파멸을 야기하게 된다. 나와 너, 아군과 적군으로 나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화끈한 범죄물 속에는 이런 분열의 정치와 풍토에 대한 비판 의식이 내재돼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류 고다드는 이 경계와 진영 뒤에 숨은 자들이 아닌 자신들 자체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며, 그 사람들 속에서 관객들이 이 폭력투성이 난장판 와중에서 아름다운 인간미를 찾길 원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