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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담은 글쓴이의 특수한 경험이므로 보편성을 담기가 만만치 않다. 내가 여행기를 잘 읽지 않는 이유다. 사건 중심으로 쓰인 글은 나 이런 거 봤다 수준의 자랑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고, 감각 중심으로 쓰인 글은 내가 그것을 직접 느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행의 이유>는 작가가 여행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 나와 같은 시선도 있고 다른 시선도 있지만 인식의 밑바탕에 깔린 일반론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힌다. 특히 마지막 장은 여행, 이야기, 삶을 아우르고 있어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에 가장 걸맞다. 2. 자신의 취향을 경험적으로 확보한 자는 그것을 쉽게 남들과 나누지 않는다지만 그건 지금에야 얘기고, 어린 시절 나는 내 취향에 확신이 없어 불안해 하던 아이였다. 그렇게 형성된 마음의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 개인적 취향을 남에게 열어보일 때면 '재미 없으면 말해. 그만 얘기할테니까.' 같이 상대로서도 실행 불가능한 의미없는 말을 종종 덧붙이곤 한다. 특히 책, 영화, 여행, 음악에 대한 취향을 밝히는 것은 청승맞게 느껴지기도 하고 상대에게 적절한 리액션을 고민하게 하는 수고를 안기는 것 같아 잘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취향을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은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재산이다. 애인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고, 책이 그렇다. 취향으로 쌓아 놓은 나만의 세계에 파묻혀 있어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에서 오는 안도를 책은 내게 선사한다. <여행의 이유> 역시 그렇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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