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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영화의 엔딩을 지지한다. 델피가 마음을 바꿔먹지 않았았다는 점을. 그저 델피를 올바르게 대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델피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점을 말이다. 만약 현실에 델피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류의 충고를 제일 많이 듣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그들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너 스스로의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한 번 생각해 봐라" 확실히 현실적으로 이게 제일 실용적인 충고인 것 같긴 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태도외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태도는 거의 옳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델피의 욕망에는 모순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답 없는 고민을 털어놓고는 기껏 돌아온 상대의 대답은 번번이 부정한다. 자신의 입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도 못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그렇담 사람들은 대체 왜 델피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걸까? 너무 오냐 오냐 대해주는 것은 아닌가?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델피도 그걸 알아야하니까 먼저 태도를 고치기전까진 그냥 대충 대충만 대해야할까? ............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진다면 좀 더 고민해 보자. 델피는 윤리적으로 잘못한 걸까? 델피를 좀 더 배려해주면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까? 한 번 냉정하게 따져보면 어떨까? 델피의 방식을 존중해주기 위한 약간의 수고를 들임으로써 우리가 잃을 것은 무엇이며 얻을 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잃을 것은 대충 그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수고' '에너지' 라고 말해도 좋겠다 그럼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단 델피이다. 델피? 그렇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한 명의 개인. 굳이 그런 지금의 델피같은 개인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질문해보자 그럼 우리들 자신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일까? ........... 우리는 젖먹이 아기도 아니고 세상은 우리들의 엄마가 아니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 사는 거다. 너무 오냐 오냐 해주길 바라고 있는 거 아닌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같은가? 물론 흔한 말이라서 그렇다. 아마 맞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이런 말을 들을 때 우리들의 기분은 어땠나? 만일 우리가 윤리적인 잘못을 저지르고나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물론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타인에게 별다른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방식대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말을 듣게되면 어떨까? 조금쯤 억울하다고 느끼지않을까? 심지어 이런 말을 자신이 신뢰하고 있던 상대에게, 혹은 용기내어 마음을 열고 본심을 고백한 상대에게서 듣게 된다면 어떨까? 많이 섭섭하지 않을까? 그럼 델피는 어땠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내가 델피에게 그러는 것이 옳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그러는 것도 옳다는 뜻이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은 굳이 타인으로부터 배려나 존중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걸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간관계가 어디까지나 사적인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직장내에서의 인간관계도 아니고 공적인 관계도 아니다. 델피는 지금 '휴가중'이다. 물론 낯선 사람과 만날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교적인 목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규칙의 적용대상도 사적인 관계에 국한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맺을 때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니 어떻게 대하길 바라고 있나? 그러니까 어쩌면 이건 반드시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당위로써의 윤리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가? 혹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 물론 이건 많이 과장한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중에서 그렇게 표독스럽게 구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모두들 나름대로의 선의를 가지고 델피를 대해 주는 것 같다. 다만 델피의 이야기를 충분히 주의깊게 들어주지 않았을 뿐이다. 혹은 델피의 문제에 대해 자신이 델피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답을 아는 자신이 델피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이건 일종의 선의이다. 아주 평범하고 폭력적인 선의. 그래도 이 영화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상식의 범주안에있는 사람들이다. 특별히 말도 안되게 무례하게 굴거나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은 적어도 없다. 어쨌거나 일상의 범주안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해결책에 대해서도 쉽사리 이게 무조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선악이 분명하지 않은만큼 미묘한 것이다. 그래도 지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난 이 영화의 결말을 지지한다. 그녀가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넘어가 자신의 태도에 변화를 시도하거나 혹은 자포자기한 나머지 어쩔수 없이 타협했다는 결말보다는, (설사 그에따른 보상이 아무리 후해도) 그냥 그녀를 올바르게 대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결말. 그래서 그녀도 그에 걸맞는 행동을 했다는 결말이 훨씬 더 마음에 드는 것이다. 너무 비현실적인 결말일까? 물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가치있는 유일한 것이 현실의 정확한 반영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가능성의 제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능성. 이 영화를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가정 해보자. 자, 그럼 이 실험으로 얻어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녹색광선이다. 그녀의 내면속에서 다소 미신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던 녹색에 대한 믿음이 녹색광선이라는 아름다운 은유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혹시 개인의 독특한 내면을 존중하는 일에는 이런류의 아름다움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즉 델피를 존중하겠다는 건 우리들 내면에 깃든 또다른 녹색광선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아니, 꼭 나의 내면에 그런게 있어야만 델피를 존중할 수 있는 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많을수록 좋다고. ........... 만일 델피가 이른바 개과천선하여 사회적인 룰을 쫓아갔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어쩌면 좋은남자는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안의 녹색광선은 자취를 잃고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이 보는 것과 비슷비슷한것들만을 보면서 살아가게되지 않았을까? 이건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들 또한 의식도하지 못한채 이런 고유한 아름다움들을 잃어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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