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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
star4.0
<환호성>, <호수길>,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 등 실험적인 영화를 연출해온 정재훈 감독의 신작이다. 밴드 유기농맥주가 작년 발표한 동명 앨범의 뮤직비디오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극장에서의 상영만을 목표로 제작'되었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공개된 시놉시스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1897년 최초로 운행했다. 영화가 아직 기계 장치라면 여전히 관객의 몸은 영화를 통해 멀리까지 갈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영화관의 공간을 보고 운송수단 차량의 내부구조를 상기시킨다며, “오늘날에 영화가 상영 장소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장소들이 과연 영화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폴 비릴리오의 주장을 상기시킨다. 비릴리오는 시각기계인 카메라와 운송수단을 동일시하는데, 정재훈 감독의 이번 영화는 그러한 동일시에 바탕을 둔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관객을 운송하는 공간이 대륙횡단열차가 지나치는 그곳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물가, 황무지, 풀숲 등이 한국인지 시베리아인지는 (영화만 보고 나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관객의 시선은 영화의 카메라라 머무른 시간 만큼 그 장소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한 사실이다. 재밌는 것은 영화의 제목과 다르게 구체적인 열차의 이미지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장에서의 상영'만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만이 영화관=운동수단의 등식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장소에 대해, 그것이 카메라에 담겨 있기에 그곳이 실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열차가 그러하듯 영화를 통해 그 장소에 대한 공간적 경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정도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영화는 구체성이 사라진 이미지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음악의 역동과 관계없이 풍경을 보여줄 뿐인 것과 같았던 영화는, 어느새 달리는 열차에서 바깥을 촬영한 듯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어떤 형상들을 보여주다가, 화소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확대된 디지털 스크린의 평면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정재훈 감독의 영화관=운송수단은 열차가 갈 수 있는 풍경-장소들을 지나 영화가 갈 수 있는 스크린-풍경으로 향한다. 이 순간에서 드러나는,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디지털 스크린에서는 상영되지 않는다는 역설은 '영화의 죽음'이라는 케케묵은 담론 속에서 모종의 생존전략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다가온다. 정재훈의 전작들은 소멸해가는, 혹은 소멸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저화질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복원하려 하였다. 전작의 대상들이 노동, 자연, 풍경 등의 것이었다면, 이번 작품의 대상은 영화관을 염두에 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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