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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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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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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Books ・ 2004

Avg 3.8

우리의 삶도 각자의 무진이 있고, 아내가 있다. 물론 그 부끄러움마저도 사유하고 있다. 규칙적으로 내리는 안개 속에서 매일 같이 거닐고, 비틀거리고 있는 우리처럼. 자괴를 거치지 않는 자애는 부끄러운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것이 그저 한낱 미봉일 뿐임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공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내 찢어버린다. 사회가 보낸 전보와 나의 무진을 향한 편지의 사이에서, 나조차도 나의 추함을 무의식적으로 기피하고 싶어 하는데 너의 미추를 알고 그를 사랑하는 과정까지의 기행을 하자는 것은 얼마나 미망한 생각일까? 그는 비틀거리는 창부의 시체를 옹위하는 아이들과 더러운 속물의 이야기 곁에서도 반감 같은 것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곳이 그가 알던 ‘무진’이고, 그곳이 그가 원했던 자아의 도피처 정도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현상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주인공이 화자이니까, 책에서 여자를 다루는 방식과 인물로서의 장치가 이렇게 사용되는 것은 적절하다. 이를 연유로 이런 표현 방식은 이 책에서 빠지면 안 되는 요체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구시대적인 작가의 문장이 역겹다고? 당연히 화자가 구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니까. 그것이 작가가 쓰고 싶었던 단지 화자의 환경일 뿐이니까 작가는 이에 대한 가치관을 우리에게 옳다고 말하던지, 세뇌한다는지에 대한 입장은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그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이 시대상을 선택했을 뿐. 그 점을 따지고 작품을 고쳐본다면 이 작품이 과연 작가가 희구하던 것이었을까? 작가는 구시대의 속물에 대한 갈망과 현재 사회상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천천히 현재의 길을 거닐며 과거를 찢어버리자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