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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t

Ordet

9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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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Weeds

Movies ・ 1959

Avg 3.9

Jan 11, 2017.

어느 유랑극단의 떠도는 운명을 통해 삶의 비애를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작품. 한 편의 영상시. 이것은 또한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관한 쓸쓸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나 오손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 등의 작품들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아버지와 결국 똑같은 길을 가는 아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빌리 와일더의 <아반티!>가 떠오르기도 했다. <부초>는 최고의 '여름' 영화 중의 한 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옛 세대가 신세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체념의 시선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오즈가 영화계에서 느끼던 감정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오즈 자신도 계속 전성기를 누릴 수는 없으며 어느 시점이 되면 무대 뒤로 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즈의 예감은 실제로 적중했는데 60년대가 되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쇼치쿠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영화 운동이 전개되며 새로운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오즈의 '액션' 영화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액션의 박력이 두드러진다. 특히 처마 밑에서 고마주로(나카무라 간지로)와 스미코가 다투는 장면의 폭발감이 압권이다. 가요(와카오 아야코)는 일종의 팜므파탈로 등장하며 가요와 기요시(가와구치 히로시)가 극장에서 만나는 장면은 조명 효과로 인해 누아르적 긴장감마저 있다. 이 영화에서 오즈는 일상의 흐름을 적확하게 담아내는 편집의 리듬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보여준다. 가히 편집의 신이요, 리듬의 제왕이라고 할 만하다. 고마주로와 기요시가 마지막으로 식당에서 만나는 시퀀스는 온갖 감정들이 순식간에 부딪히는데 이 감정들을 하나 하나 섬세하고 유려하게 표현해내는 쇼트들이 압권이다. 오즈는 영화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감독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다른 영화라면 생략했을 인물의 묘사를 통해 그 인물에게 존재감을 부여한다거나 주변부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중심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위계를 무너뜨리는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면에서도 그런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데 보통의 영화의 경우에는 서브 플롯은 메인 플롯에 종속되는 게 일반적인데 오즈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메인 플롯이 존재하기는 하나 통상적인 영화와 비교했을 때 밀도가 떨어져서 굳이 메인 플롯으로 부를 만한 이야기가 부재할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메인 플롯이 거의 메인 플롯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서브 플롯과 긴장 관계를 형성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오즈의 영화는 서브 플롯의 연쇄로 보일 때도 있다. <부초>의 경우 서브 플롯이 메인 플롯과 미묘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가 어느 순간 메인 플롯을 와해시킨다. 서브 플롯에서 역할을 담당하던 극단의 일원들 중 한 명이 극단의 돈을 훔쳐서 달아나는 바람에 결국 극단이 해체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개를 보이는 것도 영화를 끝내려는 결단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영화의 중반부는 공연에 손님이 없는 가운데 고마주로가 기요시를 만나는 일로 소일하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떤 갈등이 발생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끝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건이 발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초>에는 메타적인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을텐데 실제로 이 작품은 일종의 메타 영화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