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
오랜만에 길게 적어야겠다. 개봉 당시에 볼 땐 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그 후 근 10년이 흐른 오늘,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인 신나는 케이티 페리 노래가 삽입된 이 영화 오프닝이 문득 떠올라 다시 보았는데 참 다르게 보인다. 많은 것들이 달라 보였지만, 딱 하나만 꼽으면 영화 제목이 참 다르게 보였다. '야...이건 좀 심한데?' 싶을 정도로, 현실에서 했다간 경찰아저씨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위험한 남주의 몇몇 언행들이 제일 먼저 보였다. 이런 것들은 보통 인물의 캐릭터를 형성하거나, 로맨틱한 전개와 유머 형성을 도와주는 역할로써 관객에게 이해와 웃음을 주곤 했다. 물론 처음 볼 때의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 영화를 다시 보니, 그 기저에는 '이런 식으로 하면 여자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는 오만의 어글리 트루스가 슬쩍 보였다. 어글리 트루스라며 하는 행동들 아래에 진짜 어글리 트루스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보이는게 참 흥미로웠다. 이런 면에서 보면 결국 여주가 남주랑 이어지는 건 말도 안 되고 보기에도 불편하다. 그대신 여주가 바라는 매너있고 잘생겼고 정신 잘 박힌 완벽한 사람과 이어지는 것이 낫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영화에서도 어글리 트루스라고 나왔고 다들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주가 바라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 완벽하게만 보이던 외과의사도 첫날밤을 기대하고 여주가 지배하려 들지 않아서 맘에 든다고 하니...그리고 사실 남주처럼 대놓고는 아니라도, 사귈 때나 예쁜 여자를 보면서 음흉한 생각 한 번도 안 한 남자는 아무도 없다. 이미 머리 속에선 노후 계획까지 다 짜는게 남자다. 그럼 이런 기로에서 여자는,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예전에 '내 남자친구는 진짜 맨날 뜬금 없이 섹드립 치고 약속도 늦어서 짜증나' 라고 불평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그래서 '그럼 헤어져' 하니 그건 또 싫다고 했다. 왜 그런고 하니, 자기가 대학 생활이 힘든데 아무도 안 알아 줄 때 '힘들땐 단 거지' 하며 카페에서 케이크를 사주고 얘기를 들어주던게 그렇게 좋았단다. '아니 그런 사소한 거랑 네 불만이랑은 별개의 문제 아냐?' 했더니 아니란다. 그 때는 이해가 안 됐지만, 시간이 지나니 세상에는 완벽한 남자를 꿈꾸는 여자보다, 내 친구처럼, 영화의 여주처럼 사소한 수돗물 얘기 하나 통하는 걸로도 날 심쿵하게 하는 그런 남자를 원하는 여자들이 더 많은 걸 알기에 이해가 된다. 여자들만 심쿵하나? 사실 남자들 심쿵은 더 쉽다. 남자는 단순하다는 이미지가 요새 유행하는 단어인 프레임 아니냐? 라고 볼 수도 있다. 근데 내가 남자로서 얘기하는데 실제로 더 쉽다...우스갯소리로 게임하는 여자라고 소개하면 '사귑시다!' 하듯이, 나와 맞는 점이 있다면 여자보다 더욱 그 이성에게 관심 가고 심쿵하기 마련이다. 거기다 밀당까지 하면 어우... 얘기가 살짝 샌 느낌이지만, 결국 우리는 어글리 트루스 속에서 살아가는 걸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날 심쿵하게 만드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순진무결하고 단점없고 여자들이 원하는 모든 걸 갖춘 완벽한 남자도 없고, 나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그걸 다 받아주는 소위 말하는 착한 여자도 없다. 상대의 '어글리 트루스'들이 보이더라도 그걸 감당할 수 있고, 상대의 '트루스'가 나와 맞아 날 심쿵하게 할 수 있다면 다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취사선택은 안 된다. 그런 사람을 찾은 후에 티격태격 하면서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사귀는 커플들처럼 사는 것이다. 이런게 맘에 안 들어도 어쩌겠나, 어차피 좋든 싫든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 심쿵하는 사람 만나는게 그나마 낫지 않나. 아니면 나가서 맘에 안 드는 사람들 다 없애든지. 근데 그건 못 하니깐. 아, 요새는 차선책으로 혼자 지내는 사람도 많다. 그게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기로에 설 필요도 없지만, 글쎄...그 대신 영원히 그 자리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혼자 지내면 외롭고 둘이 지내면 괴롭다는 말도 있으니...이러나 저러나 참 어글리 트루스다.
105 likes6 repl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