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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언니밖에 없네>는 퀴어문학단편선 세 번째 작품이다. 처음에 나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이 달콤쌉싸름한 '레즈비언들의 연애담'들로만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레즈비언 말고도 게이,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니'라는 제목에 꽂혀 '퀴어'라는 단어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내 실책이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레즈비언과 무관한 내용들이 많이 등장할 거라면 이 책의 제목을 다르게 선정해도 되지 않았을까? 맥도날드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짜장면을 팔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한마디로 배신감이 느껴진다. 많은 레즈비언 서사가 세상에 가로막혀 그들의 사랑을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불운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한다. 이성애가 주류인 세상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한다. 그렇다면 표지부터 하트가 꽉꽉 채워져 있는 이 작품은 좀 다를까? 전부 읽어 본 결과 이전의 패배주의적 내용들과 별 반 다를 바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이게 현실적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여야 할까? 출판사 카드 리뷰에는 '믿고 읽는 언니들의 불행 따윈 없는 퓨처 팝픽션'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더할 나위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이 책은 21세기 한국에서 사랑하는 퀴어들이 반, 가상의 미래 세계에 살고 있는 퀴어들이 절반 등장하는데,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행복한 퀴어들만 등장시켰으면 안 되는 걸까? 아무리 현실 반영 어쩌고 하지만 현실과 다른 이상향을 그려내는 것도 창작물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매번 결국 어떻게든 헤어지고 마는 퀴어들을 다룬 작품들만 보고 있으니 조금 지치려고 한다. 마냥 행복한 사람들도 그릴 수 있는 거잖아. 왜 헤테로는 어쨌거나 해피엔딩을 해내는데, 다른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은 일부 소수 작품을 제외하고는 계속 불행해지는지 의아하다. 그런 내용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말이 행복의 여지를 열어 뒀더라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거는 개인적인 아쉬움이지만, 표지도 그렇다 보니 퀴어들의 '로맨스'가 내용의 주류가 되기를 바랐는데 막상 펼쳐 보니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퀴어고 그러한 사랑이 중점적이지는 않았다. 사랑의 형태가 인류애도 있다고 항변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다. 나는 헤테로 로맨스 작품이 그렇듯 '연인'들이 잔뜩 등장하는 내용을 바랐다. 그렇지만 퀴어들만을 다룬 작품이 베스트셀러에도 들어갔다는 게 의미 있는 행보이기는 하다. 작품 중에서는 의외로 천희란의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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