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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연

양기연

7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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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of Us

Movies ・ 2019

Avg 3.8

내가 이 영화에 준 점수는 나와 이 영화 사이의 거리를 잰 점수일 것이다. . (스포일러) . 초등학생 때 내 꿈은 소설가였다. 그리고 내 첫 소설의 소재는 무조건 '우리집'이어야 했다. 그 즈음 누군가가 글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말를 했던 걸 들었고, 나는 내 글로 우리집을 고치고 싶었다. 그 글을 끝내 완성시킬 수는 없었지만 결말만은 미리 정해놓고 있었다. 무조건 우리집 네 식구가 한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장면으로 끝나야만 했다. . 윤가은의 전작 <우리들>에 비해 이번 작품은 작품 자체로만 놓고 보았을 때 퍽 성긴 면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보리해변을 찾아 나선 여정이나 그 끝에 또 다른 '우리집'에 이르는 부분은, 전작의 섬세한 디테일이나 자연스러운 전개를 떠올려 볼 때 주제를 강조하려는 욕심에 시퀀스 자체가 툭 불거져 있는 느낌이 든다. . 그러나 어떤 단점이 있든 난 이 작품에 냉정할 수가 없다. 왜 그토록 하나가 가족 여행과 가족이 함께 앉은 밥상에 집착했는지, 우리집 모형을 쌓아올리는 그 작은 행위가 왜 그렇게 큰 의미인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집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그 순수한 믿음의 순간도, 어린 꼬마의 발버둥으론 아무 것도 변하지 않고 당장 내 앞가림조차 버거움을 깨닫는 그 차가운 현실 인식의 순간도 익히 겪어 봤으니까. .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은 차츰 무뎌지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가족들과 다 같이 성인의 입장에서 술잔을 수 번 나누며 그때의 기억들도 어느 정도는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나에겐 설핏 잠이 깨었을 때 귓전을 때리던 그 아주 작은 소리들조차 우레와 같았고, 그 시절 겪은 그 모든 곡절들이 모두 내 작은 세상을 뒤흔들고 부수는 경험들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내 가정을 꾸릴 만한 용기는 평생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내 자식들의 세상을 안온하게 지켜줄 만한 사람은 영 아닌 것 같아. 그리고 그 세상을 번번이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걸 감내하는 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설사 그 애가 커서 그 모든 상황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가 온다 하더라도 이미 아이의 세상은 몇 번이고 부서진 뒤일 텐데. 수 번이고 내게 되뇌이게 되는 말들이다. . 이 영화에 주는 만점은 영화 자체의 질을 따져 주는 점수가 아니라 그저 이 영화가 내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그 거리를 잰 점수일 것이다. 유미가 하나에게 "언니는 계속 우리언니 해 줄 거지?"라고 물을 때, 그들의 세상에 하나가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왔는지 그 거리를 재어 '우리언니'라 표현한 것처럼. 우리집도 참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하필이면 하나, 유미, 유진이 같이 분식을 먹던 어뎅맛뎅도, 그들이 수 번 지나던 세검정초등학교 앞 육교도 다 우리집이 거쳤던 동네 근처 풍경들이다. 심지어 내 여동생 이름도 하나. 이 영화 속 하나는 내 동생 하나가 졸업한 그 초등학교를 다닐지도 모른다. 텐트 안에 나란히 누웠던 그들처럼 이 영화랑 나도 수 년의 생 동안 나란히 누워 있었던 것만 같다. . 정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가족들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말하는 하나의 얼굴로 영화가 끝나고, 그들이 밥을 먹는 소리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울려 퍼진다. 어린 시절 내가 우리집을 고치기 위해 쓰고 싶었던 그 이야기의 결말과 꼭 닮은 그 엔딩이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슬펐다. 차라리 밤에 영화를 봤어야 했다. 아직 밖은 너무 밝고 시뻘겋게 충혈된 채로 부은 눈은 너무 창피하다.